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이번엔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스타일 모델학원’인데요.
오늘 단체로 시킨 김밥에서 수세미 실이 나왔습니다.”
정숙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수세미요?”
오전에 단체 김밥 60줄을 주문한 곳이었다.
혹시 주방 직원들이 설거지 하다가 잘못 들어간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주방과 김밥 마는 곳은 분리되어 있었다.
지완 사장이 가게 위생만큼은 각별히 신경을 쓰기에,
수세미 실이 김밥 안에 들어갈 가능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굳게 말했다.
“김밥에서 나온 수세미 실 사진 보냈습니다.
지금 확인해서 전액 환불해주세요.”
사진이 도착했다.
김밥 한 조각 사이에, 초록색 플라스틱 섬유 같은 실이 올려져 있었다.
정숙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요새 노안이 와서 영 가물가물했지만, 분명
가게에서 사용하는 수세미는 아니었다.
“이거… 우리 수세미가 아닌데요?…”
옆에서 보던 소이가 말했다.
“사장님, 저희는 이런 수세미 안 쓰잖아요.
한번도 이런 색깔 수세미 써 본적이 없는데?”
“저... 손님. 이건 저희가 사용하는 수세미가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환불은 불가능할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분명 김밥 먹다가 나왔다니까요. 우리 학생들이 먹고 탈이라도 났으면 큰일났을 거에요.
이건 위생 문제예요. 환불해주세요.”
정숙은 숨을 골랐다. 느낌이 쎄했다. 이건 다 먹은 후 환불받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었다.
“혹시 먹기 전에 발견하신 건가요? 이 사진에는 김밥은 다 드신 것 같은데요?”
말 끝에 묘하게 섞인 진실의 빈틈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왜 60줄을 다 먹고 남은 마지막 한 조각에서야 수세미 실이 보였을까?
이럴 때 정숙은 묘하게 승부욕이 생겼다. 아닌 건 아닌 것. 돈 몇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집은 이런 비위생적인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다.
지완이 조용히 말했다.
“사진만으로는 확인이 어렵습니다.
학원 측에서 해당 조각을 직접 가져오시면
저희가 위생 점검과 조사를 받아보겠습니다.”
학원 측은 환불을 해달라고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숙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학원 쪽에서 뜸을 들이더니 연락이 끊겼다.
지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함정이야. 꼭 이런 식으로 환불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음식점하면 참 별 사람들이 다 있네. 당신 괜찮아?"
정숙은 가슴이 먹먹했다.
“마음이 아프네요. 이럴 땐 정말 힘이 빠져요.”
후엔이 조심스럽게 정숙의 손을 잡았다.
“사장님… 신경쓰지 말아요. 저런 사람들, 할 일 없어서 저러는 거에요.
우리가 얼마나 깨끗하게 만드는데. 일부러 돈 몇 푼 아끼려고 저러는 거 천벌 받을 거에요.”
그 말이 정숙을 위로해 주었다.
우리가 아니면 된다. 우리 김밥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날 밤 불 꺼진 가게 안,
정숙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용히 떠올렸다.
상한 김밥을 책임지라고 하고,
없는 수세미 실을 만들어내고,
협박처럼 환불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손님들.
그 모든 말이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다.
계속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형식적인 태도로 손님을 대한다면 상처도 받지 않을 일.
자신의 마음을 쏟아 음식을 만들고 친절을 베푸는 걸 무색하고 어리석게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에 마음의 상채기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그 때, 인터넷 리뷰가 하나 올라왔다.
오랜 단골손님이었다.
김밥 환불 소동 전화를 받던 중, 가게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
'없어지면 안 될 가게 1순위,
저의 최애 미소김밥.
김밥 종류도 많고, 다른 메뉴들도 엄청 많은 곳.
매일 골라먹어도 1주일동안
모든 메뉴를 다 못 먹어요.
무엇보다, 미소김밥은 그냥
여타의 김밥집과 다른
집밥 같은 따뜻함과 정성이 느껴져요.
재료 하나부터 허투루 쓰지 않고,
최상의 재료 상태로 김밥을 만들어
항상 싱싱하고 아삭한 재료 고유의 식감이 엄마가 해 주는 김밥 같습니다.
사장님, 힘내세요! 오래오래 해 주세요.
이런저런 잡소리는 무시하시고요!
늘 응원합니다!!'
정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정숙은 다음 날 새벽 재료를 손질하기 위해 다시 가게 불을 켰다.
“그래도… 좋은 손님이 훨씬 많아.”
정숙은 김 위에 밥을 펴며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오늘도 마음을 말자. 진심은 통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