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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손 끝에 닿는 일의 온기

by 마음리본

본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은 창작된 이야기로,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춘심은 며칠 동안 말을 잃었다.

그저 김밥을 말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이 김을 펼치고 밥을 고르게 펴고, 단무지를 올리고…

정숙은 그런 춘심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가불까지 해가며 이번엔 잘 될 거라고 아들을 끝까지 믿은 춘심 이모의 실낱같은 희망의 눈빛.

정숙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춘심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모, 하루 이틀 쉬시는 게 어때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춘심은 그럴 수 없었다. 가게는 한 명이라도 손을 보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주방일을 거드는 직원을 2멍이나 더 늘린 터였다. 하지만 춘심은 자신이 아니면 미소김밥집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이 주방을 지켜야 가게가 돌아간다는 믿음, 그것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아니에요. 사장님. 저 혼자 쉴 순 없죠. 다들 이렇게 못 쉬고 일하는데?”

“주방 이모를 한 명 더 구해야겠어요. 우리 집 메뉴가 너무 많죠?”

“가불까지 했는데 염치없이 쉬면 안 되죠. 잠깐 바람만 좀 쐬고 올게요. 계속 안에만 있었더니 숨이 가빠와서...”


휘청,

일어나던 춘심의 몸이 흔들렸다.

무언가를 잡으려던 춘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모, 괜찮아요?”

정숙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춘심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후엔이 소리를 질렀다.

“지완 사장님, 이모 쓰러졌어요!”



병원 침대 위에서 춘심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뇌출혈이었다. 고혈압이 있었던 춘심이 아들 걱정에

잠도 못 자고, 쉬지 않고 일한 게 화근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김밥집 식구들이 119에 빠르게 신고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큰일 날 뻔했어요, 이모.

가게는 걱정 말고 나을 생각만 해요.”

병문안을 온 정숙이 춘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무슨 복인지, 정숙 사장 같은 사람을 만나서... 지완 사장도 그렇고, 내 목숨 살려준 은인이네요. 어떻게 갚아야 할지...”

“빨리 나으시는 게 갚는 길이죠. 참, 새로운 주방이모 구했어요.”

“예? 그럼 저는...”

“걱정 말아요. 안 그래도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주방 이모 1명 더 필요했잖아요.”

춘심은 눈물이 글썽였다.

“내가 자식 복은 없어도, 사장님 복은 있나 봐요.

이렇게 목숨도 살려주고, 아파도 다 배려해 주는 사장님이 또 어디 있을까. 고마워라.”



두식은 며칠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고개를 숙인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엄마…”

춘심은 아들 목소리에 눈을 떴다.

“두식이냐… 왔구나.”

그녀는 괜찮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이 오히려 더 아팠다.

정숙은 그날도 춘심이 병원 밥을 잘 먹지 못한다는 소식에 호박죽을 싸들고 온 터였다.

“어서 와요. 두식 씨. 이모가 많이 기다렸어요.”

“엄마...”

두식은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자식이라고 태어나 속만 썩인 자신이 죄스러웠다.

“나 때문에... 미안해, 고생만 시키고.”

“두식아, 왔으니 됐다. 무사하니 됐어.”

춘심은 그저 자식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 준 게 고마울 뿐이었다.



춘심이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정숙은 두식에게 바람 쐬러 나가자고 했다.


“두식 씨, 이모는 끝까지 아들이 잘 될 거 같다고, 이번엔 진짜잘 될 거 같다고....”

두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모는 당신 욕 한마디 안 했어요. 오히려 두식 씨가 기죽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두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랬군요. 나 같은 게 뭐라고...”

이젠 엄마를 아프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번번이 실패만 하는 사업 때문에 두식은 자신감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두식 씨.”

“네…”

“미소김밥에서 새벽 배달할 사람 찾고 있었어요.

인근 빌딩에 회사들이 우리 김밥 맛있다고, 새벽 배달 주문했는데 배달할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었거든요.”

“저요?”

“네. 사람 뽑으려던 참이었어요.

지금 시작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두식은 놀란 듯 정숙을 바라봤다.

“저 같은 사람 써주실 거예요?”

“당연하죠. 대환영이에요.”

정숙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미소는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아직 모두가 잠을 자는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두식의 걸음은 가벼웠다.

김밥 포장 박스를 트럭에 실으며 그는 처음으로 손끝에 ‘일의 온기’를 느꼈다.

건물 로비에 불이 켜지고, 김밥을 배달하고.

가게로 돌아오면 주방에선 후엔과 소이가 분주하게 김밥을 말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항상 따뜻한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정숙이 있었다.

두식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속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엄마, 나 진짜 이번엔… 다시 살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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