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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공부를 잘했어요?

<Verbatim>_Mother Mother

by 김단

“선생님은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셨어요?”


학원에서 멘토링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나는 그 질문을 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어볼 것이라면 과목별로 공부하는 법을 물어보거나, 모르는 것을 들고 와야지. 내 입장에서는 뜬구름 잡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긍정하면 재수 없단 소리를 듣고, 부정하면 의심의 눈초리가 돌아온다.


그래서 처음엔 난처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적당한 답변을 찾았다. 누구든 용기를 얻을 수 있고, 나도 겸손을 지킬 수 있는 답.


“저는 그냥 많이 공부해서 잘하는 거예요.”


어쩌면 진부한 말일지 모른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에디슨의 명언처럼, 노력의 가치를 강조하는 말은 이미 차고 넘친다. 이제는 노력을 말하면 오히여 겸손 떤다고 욕을 먹을 지경이다. 점점 ‘교과서로 공부했어요’처럼 의미 없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는 진심으로 그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공부하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니까.


누구도 바라봐 주지 않았던 나의 수험 생활은, 1200도 불가마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조로웠다. 중학교 때 선행 학습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중3 겨울방학에 업보를 치렀다.


나는 매일같이 수학 학원에 살았다. 하루 10시간,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개념 문제를 백 단위로 풀어 치우고, 안 풀리는 문제가 나오면 풀릴 때까지 며칠이고 붙잡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았더니 수학과 조금씩 친해졌다. 새로 배운 내용이 기존 지식의 확장, 즉 ‘반복된’ 맥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르니 수학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낯설던 수학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그렇기에 나는 수포자 친구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수능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출문제를 붙들고 여러 번 풀었다. 이미 답을 아는 문제를 왜 또 보냐고 묻기도 하지만,


반복의 본질은 ‘차이’에 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본다. 이미 스토리를 다 아는데 왜 또 볼까? 같은 이야기 안에서도 매번 다른 표현과 해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공부도 그렇다. 답에 매몰되지 않고 문제를 다시 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난다. 그 순간, 반복은 더 이상 지루한 공부가 아니라 흥미로운 발견의 과정이 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놀이처럼 반복하게 되고 익숙해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공부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반복은 나를 지치게만 하는 굴레가 아니라, 익숙함과 함께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 반복은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냥 엉덩이가 무거웠을 뿐.


* verbatim은 ‘말하는 바 그대로’라는 뜻으로, 노래의 가사보다는 제목을 고려해 노래를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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