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x>_기리보이, 키드밀리, 노엘, 스윙스
흔히 ‘소비’라고 하면 재화를 사용하는 것만 떠올리지만, 나는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상은 대부분 상충 관계(trade-off)로 얽혀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소비해야 한다. 로켓을 쏘아 올리려면 연료를 써야 하고, 여행을 가려면 돈을 써야 하며, 잠을 자는 것조차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
또한 ‘소비’를 정의할 때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라는 목적이 필요하다. 즉, 소비란 어떤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을 내어놓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그 목적이 어떤 종류이며 얼마나 소중한지에 따라 소비의 형태나 규모가 달라진다.
나는 돈을 쓰는 데 있어 꽤 짠 편이다. 정말 필요하지 않으면 지갑을 열지 않고, 선호도 그리 강하지 않아 ‘뭐든 괜찮다’는 태도로 소비한다. 그래서 제 값을 하지 못하는 소비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명품 같은 것들.
굳이 아이패드 하나도 안 들어가는 가방을…
다른 예쁜 옷들도 많은데 왜 굳이…
나에겐 인위적인 가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나는 생산성에 가치를 둔다. 택시를 타는 대신 걸으며 뉴스를 듣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대신 공부하거나 글을 쓴다. 그러므로 돈 대신에 체력과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나의 만족을 얻는다. 그러니 사실 나는 씀씀이가 헤픈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전혀 물욕이 없는 건 아니다.
수험생 시절, 갑자기 만년필 한 자루에 꽂힌 적이 있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당장 사는 건 충동구매처럼 느껴졌기에 다가오는 모의고사를 잘 넘기면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난 그 펜을 손에 넣었다.
그때 내가 산 건 단순히 펜 한 자루가 아니었다. 공부할 동기, 택배를 기다리며 느낀 설렘,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시절의 추억까지 함께 구매한 격이다. 난 아직도 그 펜 뚜껑을 열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값은 쌌지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얻은 듯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필수적인 소비는,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소비에 비해 훨씬 큰 가치를 얻기도 한다.
물질주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시각을 조금 넓혀보면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종종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