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_적재(feat. Zion.T)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부탁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이 있는 사회라 하지만 빚지는 느낌이 들어 꺼리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이해타산적으로 살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의 기브 앤 테이크는 상식이라 생각하기에 조심하는 편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떤 때는 손해를 보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남의 부탁은 최대한 들어주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무언가를 바라는 건 너무 속물적인 것 같아서 그냥 웃어넘긴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힘들게 살아가기도 한다. 대리 출석하면 될 것을 지각처리 당한다던가, 팀플에서 버스기사가 되거나 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느낀 것이 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부탁을 하며 살아간다.”
남들이 한다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조금 다르게 먹으면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심적 불편함을 조금은 견뎌야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부탁이란 ‘착한 명령’ 같다. 명령형 어조를 쓰는 것보다 ’죄송한데..‘로 시작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예의를 차린다는 그럴듯한 명분 하에 그렇게 행한다. 그 효과는 친밀한 관계일수록 강력해진다. 그러므로 적절할 때 잘 사용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부탁은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대가 없이 자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동시에 고마움의 감정은 이후 그이의 부탁에 응할 동기를 만든다. 그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호를 증대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그동안 나의 행동이 오히려 선순환을 막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을 위해 부탁을 들어주면서 나는 그렇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 사람에게 과도한 빚을 안겨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착한 명령’을 남발하거나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지만,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면 적당한 정도의 부탁을 주고받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같다.
미안하다. 친구들아. 내가 너무 개인주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