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 속에서 품어낸 성장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행복한 상태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의 정도가 0~10 사이의 숫자 중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내 수업의 주제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수업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첫 수업은, 그야말로 행사였다. 학교에 온 지 첫해,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아직 위 센터가 익숙하던 시절. 인터넷에서 하나에 7천 원짜리 키트를 사고 아이들의 웃음을 맛봤다. 하지만 어딘지, 마음엔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그 씁쓸함을 해소하고자, 다음 연도엔 제대로 된 수업을 하고 싶었다. 상담 교육을 일반적인 수업과, 상담 그 사이에 차이점을 두고 싶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기를 바랐다. 또 집단상담처럼 회기 사이의 연결점이 강한 것도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긍정심리학을 찾게 되었다.
보통의 상담은 부정적인 것의 감소를 목적으로 둔다. 예를 들면 우울이나 문제행동의 감소, 불안 완화 등. 하지만 상담에서 충분히 다룬다면 상담 수업에선 요구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 줄이기와 관련한 활동을 했을 때 "저한텐 이거 필요 없어요."라고 스스로 말한 아이들이 있듯이.
그래서 난 긍정심리학에 초점을 맞췄다. 아이들에게 불안이나 우울의 감소 이후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는 친구들은 그 다음 스텝을, 상담이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도 유익하니 일석 이조였다. 그렇게 작년에는 행복 징검다리라는 수업을 했다.
누구나 본인이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면모가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과 사용되는 단어를 바꾸면 장점이 된다. 특히 징검다리는 하나하나의 돌들이 다리가 되어 있듯이, 단점 하나하나가 장점이 된다면,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즐거워했고, 나도 뿌듯했다. 처음으로 상담 교육다운 수업을 한 게 보람찼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새로운 디딤돌을 하나 더 쌓고 싶었다.
“저도 공개수업 해보고 싶어요.”
그해 겨울, 참관수업을 보러 가서 꺼낸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모여 협의회를 진행하고 모두 해산될 즈음이었다. 친해진 선생님께 말하니, 그 선생님은 표정이 환해지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나에겐 반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열심히 반년 동안 고민하며, 수업의 주제를 정했다. 너무 뻔하지 않으면서 재밌고, 나만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수업이 뭐가 있을까? 특히 긍정심리학과 행복 수업의 큰 틀 아래에서 어떻게 찾을까, 머리를 쥐어짰다.
“레시피를 작성하듯이, 나만의 몰입 루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음식 레시피를 적듯이,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몰입하는 일종의 루틴 스케줄을 작성해 보는 것이었다. 이론적 토대도 마련되어 있고, 긍정심리학에서도 잘 유지되는 주제였다. 망설일 필요 없이 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년 후, 그날이 왔다. 내가 공개수업을 하는 첫날, 아침엔 사실 놀랍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의자와 수업안을 마련하고 다른 선생님들을 기다릴수록, 내 심장의 북소리는 점점 가빠져 갔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새 난 선생님들과 아이들 앞에 서 있었다. 10명이 넘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던 교실은, 오늘따라 더 좁아 보였다. 긴장된 상태에서 목소리가 떨리고 말이 빨라졌다. 하지만 열심히 준비한 만큼, 몸은 자연스레 움직였다. 내 몸에 나를 맡기며, 나의 유쾌한 연극은 끝으로 향해갔다.
공개수업이 끝나면 협의회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다. 내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그 순간이 공개수업의 하이라이트다. 내 수업에 대한 평가가 낱낱이 펼쳐지고, 주관적인 서로의 생각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호평을 많이 해주었다. 특히, 몰입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구체적으로 잘 형상화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했다. 나의 큰 고민거리였던 것을 잘 캐치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이 컸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스럽진 않았다. 스톱워치를 쓸 때 핸드폰 대신 소형 스톱워치를 써보라는 식이었기에, 마음이 크게 내려앉지 않았다.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특히 사회불안이 있던 나는 부담이 컸는데, 그 무게를 견디며 끝까지 해낸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달라졌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머무는 법을 배웠다. 몰입이란 두려움을 지우는 게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현재에 집중하는 용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디딤돌을 하나 쌓았다. 그리고 그 위에서, 떨림을 품은 채 성장하는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