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지나가는 것을 놓아주며 배우는 관계의 여백.
사랑을 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붙잡으려 한다.
이 순간을, 이 마음을,
그리고 그 사람을.
‘놓치면 사라질 것 같아서’,
‘멀어지면 잊힐까 봐’
애써 손을 더 꽉 쥐곤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붙잡을수록 사랑은 점점 아파졌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불안과
그 틈새에 생기는 작은 상처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의 그림자였다.
어느 날 문득,
나는 그 손을 천천히 놓았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보았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평화가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함께 있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남은 여백의 깊이라는 걸.
사랑을 붙잡으려 할 땐
그 여백을 잃어버린다.
그 사람의 숨이 닿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공간을 지켜줄 수 있는 거리,
그게 진짜 관계의 온도다.
붙잡지 않는다는 건,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신뢰다.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 머무를 거라는 믿음.
그건 말보다 더 단단한 연결이다.
사랑은 때로 머무름보다
떠나보내는 용기에서 완성된다.
함께했던 시간들이
서로를 바꿔놓았다는 걸 안다면,
그 이후의 삶에서도
그 마음은 계속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배려는
머물러 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편히 떠나도 괜찮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영원히 함께하자’는 말을 사랑이라 믿는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언제든 이별할 수 있음을 알고도
오늘을 다정히 바라보는 마음이다.
붙잡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
그건 시간의 것이 아니라, 존재의 기억으로 남는다.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붙잡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그건 포기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성숙한 다정함의 형태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의 손을 억지로 잡지 않기로 한다.
그 대신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그가 지나간 자리의 공기를 조용히 느낀다.
그 여백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