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획이었을까?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갑자기 제주에서 전화가 왔다.


7년 전, 제주 남쪽에 살던 J언니는 서쪽으로 여행을 왔고, 나는 서울에서 제주로 여행을 갔다. 협재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J언니를 만났고, 함께 숙소 근처 카페에서 한두 시간 정도 이야기 나눈 게 인연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이후 우리는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며 서로의 근황을 지켜볼 뿐, 따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J언니가 3년 만에 내게 전화를 했다. "키라야, 오랜만이야.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네 페이스북에서 봤는데, 네가 여행 갔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랑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나도 가고 싶거든. 너와 똑같은 여행 루트로 가고 싶은데, 혹시 정보를 줄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하며 그녀와 끊어진 듯했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매일 전화로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3개월 동안 유럽 여행 가면 언니네 제주 집은 어떻게 해? 언니 집에 고양이랑 강아지도 있다면서 집을 그렇게 오래 비워도 돼?"J언니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게 큰일이야. 내가 없는 동안 제주 우리 집을 봐주기로 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못 온다는 거야. 난 이미 비행기표도 다 샀는데, 우리 집을 봐줄 사람이 없어 큰일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별생각 없이 툭 던졌다. "그럼 내가 갈까?"


사실 그 대답은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농담처럼 했을 거다. 그런데 정말 다음 날 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에 J언니는 "키라 네가 오면 나야 좋지. 그런데 우리 집이 정말 정말 시골집이라 생활하는 데 불편할 수 있어. 혹시 네가 정말 오고 싶으면 일주일 정도 우리집에 머물러 보고, 그때 결정하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지옥이었다. 그래서였을까? J언니가 던진 '제주살이' 기회를 덥석 물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부정부패가 가득한 이 회사에 미련이 없었다. 어차피 그만둘 회사라 생각해서, 내게 남은 연차와 휴가를 모두 모아 다음 날 바로 비행기를 탔다. 당시 나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고민한 게 아니라, 서울이라는 이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오는 제주였다. 사실 나는 제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게 제주는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그저 '한국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한국인들과 달리 제주에 대한 설렘도, 애정도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제주에 살게 됐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마치 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한다.


가끔 사람들은 이런 내 이야기를 들으면 용기 있다고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고, 다만 이곳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2017년 4월, 모든 게 싱그러운 봄.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전혀 싱그럽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울을 벗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제주 서귀포 남원하면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내가 J언니를 제주에서 처음 만나고 헤어질 때, 언니는 곧 남원으로 이사 간다는 말을 했었다. '남원? 제주에도 남원이 있구나.' 이상하게도 그 '남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꽤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제주 서귀포 남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J언니는 친구와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랑 산다고 했다. 제주에 도착했을 때 J언니와 언니의 친구는 육지 집에 있었다. 강아지는 동네 이웃집에 맡겨졌고, 고양이 혼자 J언니 집에 머물고 있었다. J언니의 이웃이 나를 마중 나와 J언니 집으로 안내해 주기로 했다.


이웃 언니는 나에게 집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서 장을 먼저 보는 게 나을 거라며, 남원읍에 있는 하나로마트로 나를 데려갔다. 일주일 동안 먹을 것들을 이것저것 구입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누군가가 그랬다. 그곳이 시골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하나로마트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이웃 언니를 따라 J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이웃언니의 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집이 아니라 이상하게 귤밭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설마 저 멀리 보이는 저 집은 아니겠지? 귤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집은 마치 폐가처럼 보였다.


오래된 돌집 같았는데, 입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집 앞이 비닐하우스로 증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비닐 위는 쥐색 부직포 같은 보온재 천으로 덮여 있었다. '에이, 설마 저 집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며 속으로 빌고 빌었다. 하지만 이웃 언니는 너무나 해맑게 그 집 앞에 서서 "여기야" 하고 알려줬다.


"앗, 네? 네에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뭔가 잘못됐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완전 폭망했네.' 온갖 생각이 스쳤다. 쥐색의 천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가 봤다.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거리며 맞이한다. "네가 미얀이구나. 반가워." 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웃 언니에게 물었다. "집 열쇠는요?" "열쇠? 없는데!" 헉! 뭐라고? 집 열쇠가 없다고?!!! 샷시문 앞에 걸쳐진 나뭇가지가 열쇠처럼 걸려있다. 이게 뭐야? 나뭇가지만 치우면 끝인데...... 문을 열고 집안을 들어서는데 집안은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을 만큼 깜깜하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밝은 곳은 현관 앞 비닐하우스로 확장한 커다란 마루 공간 뿐이었다.


이웃 언니는 간단하게 집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돌아갔다. 정말 오래된 제주 시골집이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데? 나쁜 놈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집안의 문이란 문은 모두 잠궜다.


나는 과연 이 귤밭 안 오래된 돌집에서 일주일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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