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줄게, 그 집!

by 하우스노마드 키라

제주에서 첫날 밤. 귤밭 안 제주 돌집엔 나와 고양이 미얀이만 남았다. 심지어 집에는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와이파이는 된다는 것. 그리고 나는 고양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동물을 무서워했다. 낯설고 외진 오래된 집 때문에 가뜩이나 초긴장한 상태라 잠도 오질 않는데 거실에 있던 미얀이마저 방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긁어댄다.


'자는 동안 고양이가 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나는 모른 척하고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미얀이는 밤새 문을 긁어댔다. 그래서였을까?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당연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이른 아침 눈이 떠졌다.


방문을 열자 거실에 있던 미얀이가 나에게 왔다. 나는 미얀이에게 밥을 챙겨주며 어젯밤엔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헉, 이게 뭐야? 따뜻한 햇살이 나무 마루에 넘치게 들어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 새소리 어쩔 거니? 마치 발리 우붓에서 맞이하는 아침 같았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며 햇볕 샤워를 하고 집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어제는 멘붕이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집 주변 또한 온통 귤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집 바로 옆 작은 텃밭에는 상추, 고수, 파, 유채나물 등 샐러드 거리가 가득했다.


나는 곧장 이것들을 뜯어다 샐러드를 만들고, 빵을 구웠다. 예상치 못했던 따뜻한 제주 햇살 가득한 마루에 앉아 혼자 아침을 먹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었다. 여전히 집안은 어두웠지만, 마음만큼은 환해졌다. '그럼 여기서 일주일 먼저 지내볼까?'


마침 이웃 언니에게 서귀포 오일장에 가자고 전화가 왔다. 대문도 없고, 열쇠도 없는 집에 열쇠 대신 나무 막대기를 문 앞에 걸어두어 '집에 없다'라는 표시만 해두고 따라나섰다. 오일장치고는 규모가 제법 컸다. 딸기가 나오는 철이라서 딸기도 사고,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톳도 샀다.


다음 날 아침, 두부를 넣어 톳두부무침을 만들고, 된장국을 끓여 밥을 지어 먹었다. 새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건강한 밥을 먹는데 괜히 혼자 웃음이 났다. 좋다. 그냥 좋다.

여기야말로 진짜 '리틀 포레스트'네~


다음 날 밤부터 미얀이에게 방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미얀이는 내 발밑에서 얌전히 웅크리고 잤더라. 이 녀석이랑 잘 지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 집 정말 묘하다. 집 안은 어두운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다고 해야하나?


J언니 집에 머문 지 5일째 되던 날, 육지에서 J언니와 친구가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J언니가 유럽 여행 3개월 가 있는 동안, 내가 이 제주 집을 지키겠노라고. 처음엔 조금 무서웠는데, 미얀이가 있어 든든하고, 이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나는 제주 시골에 살아보기로 했다.


언니들이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 한 달 동안, 나는 속성으로 과외받듯 제주살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면서 집 근처에 바닷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평소에 관심도 없던 길가에 풀 이름들도 하나둘 알게 되었다. 바닷가 주변에 자라는 '번행초'라는 식물을 제주에서는 시금치처럼 반찬으로 무쳐먹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제주에 비가 올 때는 꽤 습하기 때문에 제습기 사용법도 배웠다. 사실 육지에서는 제습기를 쓸 일이 없었다. 제주는 집집마다 제습기가 한 대씩은 꼭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언니들은 다음 달 산티아고로 떠났고, 귤밭 안 돌집엔 다시 처음처럼 나와 미얀이만 남았다. 두려웠던 마음 대신 편안한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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