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原罪)

by 임경주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먹을 갈아


거짓말로 용돈을 타내려다 들켜

일종의 벌을 받고 있는 셈인 거지


대문 밖에는 친구들이 놀자며 기다리고 있어


아이의 이름을 부르네

놀자고 부르네

부르고 또 부르네


아이는

마음이 급해


아버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네

모포 위에 화선지를 까네


한글자,

한글자를 써내려 갈 때


벼루와 먹이 탁! 하고 부딪쳤고

한방울 먹물이 튀어 올랐어


原罪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罪를 써야할 자리야


하이얀 화선지에

한방울 먹물이 튀어 박혔네


하이얀 화선지에

한방울 먹물이 튀어 박혔어


붓이 멈췄어

시간도 멈췄어

세상의 모든 빛과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해


아버지가 고민에 잠겨


아이는 거짓말에 이어 또 혼이 날까 두려운 거지?


아버지가 아이를 보고 웃더니

다시 써내려 가네


한방울 먹물이 罪​자에 감춰졌어

감쪽 같아


저 먹물이 죄라면, 저 죄는 지금 있는 걸까?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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