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마의 해석
그녀가 거식증에 걸린 이유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줄게. 자네가 할 일은 가장 잔인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거야.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화나 전설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최고로 흉측하고 잔인한 괴물 말이야. 자네는 그저 아이디어만 내놓으면 돼. 나머지는 여기 박팀장이 다 알아서 할 거야. 알겠어? 앞으로 한 달이야. 한 달 뒤, ‘괴물3’ 캐릭터 공모전에서 보자고. 난 자네가 해낼 것이라 믿어. 이 시대 최고의 괴물을 창조해봐!”
<괴물3> 영화제작관계자들과의 미팅에서 봉준호감독은 나에게 말했다.
난 수능을 두 달 앞둔 고3수험생이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고, 잠을 줄이고 또 줄여, 엄마의 감시를 벗어나 인터넷에 호러소설을 연재하다보니, 어느 날 메일이 한통 도착해있었다.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메일을 열람해보고 깜짝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김준상님.
저는 할리우드 CG팀 ‘오파너지’ 에서 시각디자인을 맡고 있으며 ‘오파너지’의 유일한 한국여성 박효주라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오파너지’는 ‘해리포터와 불의 잔’, ‘신씨티’, ‘헬보이’, ‘가필드’ 등등 다수의 영화에 참여해 그 기술력을 세계에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저희 ‘오파너지’ 팀은 봉준호감독의 2010년 신작 ‘괴물3’ 의 동영상모션 및 CG총괄을 맡게 되어 일주일 전부터 서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가 귀하에게 메일을 보낸 이유는, 어제 저녁이군요. 친구의 추천으로 귀하의 인터넷소설 ‘몬스터’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귀하의 소설 ‘몬스터’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캐릭터를 통해 무한한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군요. 본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괴물 3편’ 에 등장할 ‘괴물’ 의 캐릭터창조를 위해 귀하의 도움과 조언을 받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처를 남기겠습니다. 010-XX6-XX10.>
처음에는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꿈이 아니라면, 사기꾼이라 생각했다. 호기심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심장이 폭죽 터지듯 요란하게 뛰었다. 소름이 전신에 끼쳐왔다. 누군가가 온몸을 사포로 빡빡! 문지르는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부모님께도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진짜 같아?”
결국, 베스트프렌드에게만 살짝 메일을 보여주었다.
“응.”
“사기꾼 아닐까? 사기꾼일거야. 사기꾼이 틀림없어. 이런 프로페셔널들이 뭐가 아쉬워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겠어.”
“아냐, 내가 알기론 ‘괴물2’ 있잖아. 그것도 캐릭터공모전에서 합격한 거야. 수상자가 우리처럼 고등학생이었지?”
“정말? 나 그런 말 처음 들어보는데?”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래?”
“어쨌든, 와! 김준상. 축하한다. 이거 집안의 경사야! 부모님께 말씀드려!”
“못해.”
“왜?”
“알잖아. 울 엄마 성격. 엄마 알면 난리 난다.”
“하긴, 너희 엄마 교육열이 너무 높아서 눈에서 레이저 나오는 걸로 유명하시지……. 그래도 이거는 가문의 영광인데.”
“영광은 무슨, 엄마가 알게 되면 내 소설인생은 그날로 끝이야.”
난 친구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해 둘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되었다.
엄마목표는 내가 S대 의과대학에 합격하는 것이다. 수능을 두 달 앞둔 지금, 이 사실을 말씀드리면 퍽도 좋아하겠다. 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한 채로, 박효주라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고, 삼성동 코엑스건물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김작가님.”
와, 처음 들었다. 그것도 <오파너지>의 시각디자인팀장에게 작가님이라니! 난 정말 황홀했다. 명함을 받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박효주라는 여자는 미국에 살면서 햄버거와 콜라만 먹고 살았나, 굉장히 뚱뚱하고 -특히 엉덩이가 무척 컸다- 키가 작고 주근깨투성이에 눈매가 사나웠다. <오파너지>의 시각디자인팀장이라는 직함만 아니라면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정말 여자로서는 꽝! 인 여자였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 당신이 그냥 이대로 괴물해도 괜찮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기, ‘괴물2’ 에서 괴물을 만든 분은…….”
“아, 작년 7월부터 그분에게 연락을 했죠. 캐릭터 몇 개를 받은 상태고요. 하지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새롭고 획기적인 괴물을 찾고 있답니다.”
“아, 네…….”
생긴 것만큼 날카롭게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요지만 딱 잘라서 말해준다. 난 살짝 주눅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어색함에 발치만 내려다보는 그 때, 그녀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악마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만의 룰과 법칙이 있어서랍니다. 율(律)이라고나 할까요? 아, 제가 아는 괴물 중에는 인간이 스스로 ‘난 죽어도 괜찮아, 잡혀 먹혀도 좋아!’ 라고 세 번 말했을 때만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괴물도 있어요. 참 별난 괴물이죠?”
별나긴! 참 유치한 괴물이구만! 그런 룰이 어디 있어? 난 박효주팀장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기꾼인지 아닌지 그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나에겐 그것이 중요했다.
일주 일 뒤, 박효주팀장의 추천으로 <괴물3> 제작미팅에 참여하게 되었다. 비공개로 진행되어 기자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제작미팅이었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다. 하지만 기자들은 둘째고 캐스팅 된 배우라도 제작미팅에 참여하는 게 아닌가? 딸랑 다섯 명이 뭐야? 헐리우드 최고의 CG팀이라는 <오파너지>가 겨우 네 명? 이 사람들 진짜 사기꾼들 아냐? 하지만 세 명의 미국인 사이에 봉준호감독이 있었다. 사실, 난 봉준호감독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화제의 영화 <괴물>로 유명해 이름만 알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박효주팀장이 날 소개시키며 감독님께 인사하라고 하니깐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언젠가 인터넷에서 무심코 본 파마머리에 검은 뿔테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살다보니, 참 별일이었다. 내 소설이 인터넷에서 조금 인기가 있긴 하지만, 이정도의 영광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 뭔가 착각을 해도 단단히 착각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몬스터! 와, 정말 재밌게 잘 읽었지. 대단한 작품이야. 고3수험생이 그런 글을 써냈다니, 정말 대단하군! 나 두 번 놀라는데? 몬스터에 놀랐고, 지금은 고3작가님 때문에 또 놀라고? 나 말이야, 몬스터 열혈 팬이라고.”
특히 봉준호감독이 내 소설을 너무도 재밌게 읽었고, 열혈 팬이 되었다고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해주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난 봉준호감독의 말대로 최고의 괴물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엄마의 감시를 피해- 너무도 고민한 탓에 코피가 계속 쏟아져 나왔다. 밥맛도 잃어 살이 쭉쭉 빠졌다. 젖살 같던 볼 살이 몽땅 빠졌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퀭해졌다.
“아주 제대로 하고 있나 본데? 이거, 괴물 만들다가 괴물 되겠어. 새댁처럼 곱던 얼굴이 이게 뭐야? 많이 먹어라. 하나 더 사줄까?”
친구는 내가 고생한다며 햄버거를 사주었다. 잘되면 한턱 쏘라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아직도 부모님께 말씀 안 드렸어?”
“말했잖아. 엄마 아는 날 내 소설인생 끝! 이라고.”
“그래, 잘했다. 근데 너 살 빠지니까. 꼭 혜원이 같다.”
“혜원이?”
“혜원이 몰라?”
“혜원이 알지. 최혜원 말하는 거 아냐? 혜원이가 왜?”
“그래, 최혜원. 지금 거식증에 걸려서 괴물 되었잖아. 너 지금 살 빠진 건 아무 것도 아냐. 나 우연히 봤는데, 진짜 괴물 같았어.”
난 깜짝 놀랐다. 혜원이와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잠깐 사귀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엄마가 여자 친구 만나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도 했고, 또 공부와 새로운 친구들에게 묻혀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는데, 몇 년 만에 듣게 된 소식이 거식증이라니!
“여자들 이해할 수가 없어. 난 적당히 통통한 여자가 좋던데.”
난 통통하고 귀여웠던 혜원이를 생각하며 무심코 말했다.
“한번 만나볼래?”
친구가 묻는다.
“왜?”
“그냥, 오랜만에. 뭐, 싫으면 관두고.”
“너 그동안 혜원이랑 연락하고 지냈어?”
“아냐, 우연히 만났다니까? 혜원이 어머니께서 너 궁금해 하더라. 혜원이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한다던데?”
“그래.”
난 살이 쭉 빠진 혜원이를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통통하고 귀여운 얼굴만 떠올랐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20일이 훌쩍 지나갔다. 박효주팀장이 기한을 주었던 마감 일이 이제 10일 남았다.
“작업 들어가려면,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는데……. 뭐, 할 수 없지. 마음 편하게 가져. 진정한 창조력은 명랑함, 솔직함, 용기! 이 세 가지에서 나온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괴물이라고 해서, 딱히 어두운 것만 생각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봐.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탄생할 수도 있잖아.”
말은 이렇게 해도, 박효주팀장은 은근히 포기한 상태였다. 내가 몇 개의 아이템을 제시했는데, 시큰둥한 눈치였다. 난 슬슬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새로운 괴물, 획기적인 괴물,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최고의 괴물,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지 않았던 최고의 괴물!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하며 머리를 책상에 쾅! 하고 찍은 순간, 코피가 양쪽에서 심하게 터졌다.
“어머머, 어떡해! 준상아 좀 쉬어가면서 공부 해! S대학도 좋지만 엄마는 네 건강이 더 중요 하단다!”
엄마는 깜짝 놀라 방안에 들어와 소란을 떠신다.
“네, 엄마.”
“어머머, 어떡해! 지혈이 전혀 안되네? 여보, 여보! 준상이 코피가 심해요!”
코피가 1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터졌다. 코를 싸잡고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약품으로 코 속 혈관을 지졌지만 집에 돌아올 때 또 터졌다. 다시 병원에 들러, 또 지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물과 함께 코피가 또 흘러나왔다. 한계였다. 난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도 높은 벽이었고, 절대로 넘을 수 없는 험준하고도 높은 산이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내가 살기위해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게도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는 순간, 코피가 멈췄다. 정말 기적처럼 멈추었다. 하지만 코피대신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것을 이루고 싶은 절실함과 간절함의 증거라고, 그 누가 씨부렁거렸단 말인가!
“혼자 있고 싶단 말이야!”
그날 난, 오랜 만에 엄마에게서 해방되었다.
엄마 앞에만 서면 죄인이 되어가던 마감일 5일 전.
오래 전 잊고 있었던 그녀, 혜원이의 어머니께서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봐.”
친구는 내 등을 떠민다. 자율학습이 끝난 늦은 밤, 교문에는 나와 내 친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황금빛을 뿜어내는 둥그런 보름달만이 우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난 혜원이 어머니를 따라 걸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 노래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북유럽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악마의 노래였다.
등불을 다오, 등불을 다오…….
수백 번 고쳐들고 환한 정오에 찾아 나서겠네.
너희 인간이란 것들의 마음과 정신은 내게 있어서 깊은 잠과 충실한 하녀.
그 누가 있어, 이 어린아이의 참된 이름을 부를 수 있을까?
등불을 다오, 등불을 다오…….
수백 번 고쳐들고 찾아 나서겠네…….
3년 만에,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소문대로 거식증에 걸려 있었다.
“부탁 하마, 네 얼굴을 보면 혹 마음을 바꿀까 해서……. 일기장을 보았는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널 많이 좋아했더구나. 곧 수능인데, 정말 미안하구나. 그 동안 안 해본 것이 없단다. 제발 죽이라도 먹었으면…… 이렇게 전복까지 준비했는데…… 오늘도 내다 버려야 할 것 같구나. 물은 마시면서 왜 아무 것도 안 먹는지…….”
혜원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3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 그녀 뒤에 서 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그녀, -중학교 때에도 피아노는 정말 잘 쳤다. 그래서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선 엽기 그 자체였다. 난 너무 놀랐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미안해졌다. 거식증이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다. 더 이상 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상태였다. 이건 사람이 아니라 숫제 말라비틀어진 미라였다. 3000년 전의 미라가 살아 움직이는 것도 모자라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쇼팽의 즉흥환상곡(*Fantasie Impromptu Op.66)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래, 혜원이는 이 곡을 무척 좋아했었다. 오래 전, 잊고 있었던 혜원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난, 쇼팽이 가장 좋아. 특히 이 곡, 즉흥환상곡 말이야. 선율이 너무 곱고, 듣고 있으면 환청 같거든. 정말 멋지지 않아? 쇼팽이 작곡한 즉흥곡 중 첫 번째 곡으로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그게 다 살아생전 출판을 거부했고, 자신이 죽은 뒤에는 악보를 파기해달라는 유언까지 남겨서 그런다고 해……. 아, 나 정말 잘 치고 싶다.
내 눈은 순간, 착각을 일으켰다. 3년 전, 혜원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연주에 빠져,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리듬이 완전하게 다른 왼손과 오른손의 빠른 악구(樂句)가 격렬하게 교차되는 중간부에서 환각 같은 선율이 흘러나온다. 소름이 끼쳐왔다. 머리가 쭈뼛하게 서는 순간, 그녀는 연주 도중 뒤돌아 날 바라보고 깜짝 놀란다. 나 역시 깜짝 놀랐다. 폭죽처럼 뛰던 심장이 쾅! 하고 영원히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날 바라본다. 그러나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는지, 피아노 덮개를 닫고, 뒤돌아 날 정면으로 바라보며 앉아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당당하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바라본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얼마나 엽기적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안구돌출증처럼 곧 튀어나올 것만 같은 눈알은 초점 없이 빠르게 돌아간다. 이빨 빠진 노인네 같은 잇몸에 겨우 붙어 있는 이빨. 말라붙은 전신 가죽은 쭈글쭈글하고, 뼈만 앙상한 해골 같은 혐오스런 모습은, 진정 괴물인데 그녀는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알지 못한다. 난 더 이상 그녀를 볼 수가 없어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사진. 거울 모서리에 끼어져 세월 따라 휘어진 사진을 보라! 그녀의 졸업연주회 때 내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통통하고 귀여운 그녀가 진짜 그녀인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 이렇게 험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니! 그녀가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서서히 멀어졌고 2학년 겨울방학이었나? 3학년 봄방학 때부터였나? 하여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변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식증이라. 하, 정말 못된 병이로구나. 그래, 여자들 날씬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겠다. 하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수준이잖아!
“저, 저기…….”
“…….”
“거, 걱정되어서 왔어. 음, 네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오셨더라. 나 알겠어?”
“알아. 준상이. 왜 모르겠어.”
그녀는 발음도 심하게 샜다.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어색한 분위기도 바꿀 겸해서 타이르듯 말했다. 사실 울컥했다.
“야, 아무리 날씬한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까지 안 먹고 살 빼면 어떡해?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라 자살기도다!”
그녀는 순간 눈에 힘을 준다. 난 움찔했다. 눈알이 곧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돌출 된 안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굉장히 강했다. 난 물러서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계속 내뱉었다.
“너, 이렇게까지 살 안 빼도 정말 날씬하고 예뻐. 그때 말이야, 너 정말 예뻤어. 우리 학교에서 너처럼 날씬하고 예쁜 애 한 명도 못 봤어.”
난 날씬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안광이 다소 약해졌다.
“무, 물론 날씬해지고 싶으니까. 여자들은 다 그러니까. 다이어트 하는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뭘 먹어도 죄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어. 너, 지금 뭘 먹고 싶어 참지 못해 결국 먹었다가 죄책감에 손가락 넣고 토하고 그러지? 그거 다, 거식증 증상 이래…….”
운다, 그녀가 운다. 돌출 된 안구의 모세혈관이 터져 빨갛게 충혈 되었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우, 울지 마. 왜 울어? 너 정말 날씬하고 예쁘거든?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먹자? 응?”
그녀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계속 울다가, 피아노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저 몸에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 것일까? 정말 벌떡 일어난다.
“?”
그녀는 책상에서 노트와 연필을 챙겨 피아노의자에 다시 걸터앉았다. 등이 꼿꼿하다.
나는 잠자코 그녀의 행동을 지켜본다. 피아노덮개 위에 노트를 내려두고, 그 위에서 글을 써내려간다. 연필을 꼭 쥔 앙상한 손이 노트 위에서 빠르게 움직인다. 저 앙상한 뼈다귀에서 예쁜 글씨체가 완성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
내가 음식을 먹으면 사람들이 죽어
그렇구나. 문제는, 혜원이의 정신세계였구나. 미친 거였어. 예뻐지고 싶어 거식증에 걸린 것을 넘어서, 미친 거였어.
“네가 무얼 먹는다고 해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도 내 말을 못 믿는 구나.
“그 말을 누가 믿겠니?”
난 진심인데…….
그녀는 필기를 멈추고, 오래도록 창밖만 바라보다가 회상에 잠긴 듯 눈이 풀어지더니, 다시 글을 써내려 간다.
널 많이 좋아했었어.
“나도……. 너 그 때 정말 귀엽고 예뻤어. 너처럼 귀엽고 예쁜 애 없었어.”
난 다시 한 번 강조의 강조를 거듭했다.
“또 울어?”
그녀는 서럽게 운다. 3000년 전 미라가 흐느끼며 우니, 정말 분위기 살벌하다. 그녀는 울음을 겨우 참더니, 또 필기를 시작한다.
믿어 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음식을 먹으면 정말 사람들이 죽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난 이제 어서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할 일이 많다. 그렇구나! 지금 널 가지고 괴물을 창조해봐야겠다. 정말 대박이다! 거식증에 걸린 여자아이가 집에서 피아노만 치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던 거야!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박효주팀장의 화려한 CG기술에 의해 새롭게 태어날 거식증 그녀, 식인귀 괴물! 난 어서 나가고 싶었다. 박효주팀장에게 빨리 연락하고 싶었다.
날 믿지 못하겠지?
“아, 하하……. 그, 그게…….”
이해해, 믿지 못하는 거.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뭘 먹을 때마다 사람들이 죽어.
“…….”
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 가봐야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또 다시 서럽게 울고 있으니 말할 수가 없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연필을 쥔 그녀의 손은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야. 내가 무얼 먹을 때마다…… 그 괴물들은 사람들을 잡아먹어.
“괴물?”
응, 괴물
“웬 괴물? 네가 음식 먹는 것과 괴물이랑 무슨 상관인데?”
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얘기에 빠져들어 또 다시 질문을 한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만 가야지 하면서도…….
악마들의 룰이며 법칙이래. 내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돼지를 최초로 도축한 인간은 괴물에게 잡혀 먹혀.
“무슨 말이야?”
난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못했다. 난 그녀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괴물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괴물은,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상상 속의 괴물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거식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웃음이 나와 웃고 말았다.
내 말이 웃겨?
“뭐가 좋을까?”
난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녀의 돌출 된 안구가 다시 광기 가득한 빛을 발한다. 난 조금 무서웠다. 저 눈빛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정상인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죽이라도 먹었으면……. 그래, 죽이다. 죽을 만들어 주는 거야. 난 내가 쉽게 잡아 죽여 만들 수 있는 죽 재료를 생각해본다.
“뭐가 좋을까?”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 너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싶어서.”
진실은 내 말이 진실이야.
“아니. 내가 진실을 보여줄게. 그리고 악마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며 영화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증명해줄게.”
순간, 떠올랐다. 전복! 혜원이 어머니께서 죽을 끓이기 위해 전복을 준비하셨다고 했지. 내가 그 전복을 직접 손질하면 되겠구나.
“좋아, 잘 들어. 네 말대로 내가 전복을 잡아 죽여, 깔끔하게 손질해서 죽을 끓여줄게. 넌 그걸 맛있게 먹는 거야. 알겠지? 그리고 난 괴물에게 잡혀 먹혀 죽고. 됐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너 정말 죽어.
“그래, 난 죽어도 좋아. 정말, 정말 괜찮아. 난 죽어도 괜찮아, 잡혀 먹혀도 좋아!”
난 죽어도 좋다고 세 번 강조해서 말했다. 순간, 박효주팀장이 말한 유치한 괴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주방에서 혜원이 어머니의 도움으로 전복을 손질했다. 시키는 대로 껍질을 잡고, 수저로 파듯이 왼쪽으로 돌려 살을 분리했다. 생각보다 쉬웠다. 살아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죽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초록색 내장을 떼어내 믹서에 넣고 돌렸다. 살덩어리도 넣고 돌렸다. 욍! 하는 소음과 함께 내장과 살덩어리가 분쇄된다.
“고맙구나! 널 데려오길 정말 잘했어.”
“모르겠어요. 아직은 먹는다고 하지는 않았는데, 제가 억지로 먹여볼까 해요.”
“그래, 억지로라도 꼭 먹여주렴.”
죽이 완성되었다. 난 그녀 앞에 가져갔다. 그녀는 전복죽을 앞에 두고, 날 무섭게 노려본다.
“자, 이제 좀 먹어. 내가 직접 전복을 잡아 손질했어. 네가 이걸 먹어도, 괴물 따위 나타나지 않아. 휴우! 잘 들어. 네 말은 논리적으로도 맞지가 않아. 치킨용으로 쓰이는 닭은 공장에서 한꺼번에 대량으로 잡아 손질하는데, 누가 죽인지 어떻게 알고 괴물이 그 사람을 찾아 잡아먹는다는 거야.”
“까르마…….”
난 그녀가 발음이 새는 이유로, 제대로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발음이었다.
“까르마? 업?”
“그래.”
악마가 그랬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강제로 죽게 되면 원한과도 같은 까르마를 내 뿜는대. 그 원한에 사무친 까르마는 자기를 죽인 자에게 씌어지고, 악마는 그 까르마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가 있대.
난 정리를 해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전복을 죽인 순간, 전복은 죽기 전 원한에 사무친 까르마를 내뱉고, 그 까르마는 나에게 뒤집어써진다. 이 말이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와, 미쳐도 불교적으로 미칠 수가 있구나. 난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 지금 그녀가 말한 까르마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 Karma)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돌고 도는 악업(惡業)인 것이다.
“그래서, 네가 이 전복죽을 맛있게 먹게 되면, 괴물은 전복이 죽기 전 내뱉은 까르마를 찾고, 까르마에 뒤덮인 날 잡아먹는다는 거지? 어때, 나 정확하게 이해한 거야?”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제발 먹어 줘.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줄게.”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킨다. 군침이 도는 것이리라. 전복과 참기름이 어우러져 구수하고도 향긋한 냄새를 풍겨낸다.
나 정말 먹고 싶어. 너무 힘들어.
“그래, 먹어.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집어 든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끝내 먹질 못한다. 수저를 내려놓고 만다.
널 너무 좋아해!
난 그녀의 글을 무시했다. 옆에 걸터앉아, 수저를 들었다. 한 수저 가득 담아, 그녀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
“괜찮아, 먹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그녀는 울면서 입을 꼭 다문다.
“혜원아, 나 너 예전 예뻤던 모습 꼭 보고 싶어. 응? 먹어 주라? 내가 정성껏 끓였단 말이야.”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젓는다. 난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먹지 마! 됐어! 고맙다. 네 덕분에 괴물에게 잡혀 먹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네!”
이미 식어버린 죽 그릇을 들고 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쳐 먹어, 이년아!”
하며 강제로 딸아이의 입을 잡고 벌린다. 아무리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지만, 그 행동은 너무 과격했다. 어머니와 부딪히는 바람에 죽 그릇이 내 손에서 빠져나가 침대 위에 엎질러졌다.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필사적으로 반항한다. 눈물로 젖은 눈동자는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소리 없는 말이 들려온다.
도망쳐!
“먹어! 쳐 먹으란 말이야!”
그녀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다. 입을 더욱 꼭 다문다.
“저, 저기. 어머니……. 그렇게 심하게…….”
그러나 내 말을 무시하고, 딸아이의 머리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한다.
부모가 속상함에 자식을 나무라는 그런 성질의 손찌검이 아니었다. 평범한 아주머니가 할 수 있는 구타가 아니었다. 공포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구타였다. 죽 그릇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순간, 그릇이 산산 조각났고, 피가 터져 나온다. 이불이 찢어져 솜털이 날리고, 침대에 쏟아진 죽이 벽과 천장까지 튄다.
“더 이상은 못 참아! 벌써 몇 년째 굶은 줄 알아?”
구타로 인해 그녀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난 너무 놀라, 두 다리의 힘이 쭉 빠져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그만 두세요!”
난 놀라움을 넘어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소리 질렀다. 그러나 내 말을 무시한다. 다시 딸아이의 입을 잡고 강제로 벌린다. 그녀가 나를 향해,
“도망쳐!”
라고 비명 같은 절규의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눈이 하얗게 돌아가더니, 거짓말처럼 입이 180도로 쫙! 열렸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턱관절이 빠져 벌어진 것이다. 난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꿈만 같았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평범한 아주머니가 저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딸을 상대로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녀의 어머니는 침대커버에 지저분하게 엎어진 죽을 쓱쓱 쓸어 모아 한 주먹 쥔다. 180도로 벌어진 딸아이의 입, 정확하게는 혓바닥에 죽을 쳐 바른다. 솜털과 피도 함께 발라진다. 그런 다음, 코를 막고 입을 꽉 다물어버리니, -그녀는 어린아이가 강제로 약을 먹듯- 발버둥치다가 입안의 내용물을 삼키고 만다. 음식물을 삼키고 나서야,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해방되었다.
그녀는 즉시 손가락을 넣어, 삼킨 것을 토해낸다. 저절로 벌어지는 턱관절 아래로 죽이 흘러나온다. 이마에서 새어나오는 피도 함께 흐른다. 침대 위에 약간의 내용물과 피를 쏟아낸 순간이었다.
“이미 끝났어.”
그녀의 어머니는, 목을 좌우로 풀며 손을 얼굴로 가져가더니, 얼굴 가죽을 잡아 뜯는다. 난 비명조차 내지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괴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의 가죽을 벗고 괴물로 변해있었다. 눈도 없고, 코도 없었다. 둥근 머리에는 불규칙한 이빨로 돌출된 커다란 입만 있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뒤덮인 그 괴물의 전신에는 구더기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났다. 난 멍한 상태로 혜원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팔이 들려지는가 싶더니 괴물이 곧 뜯어먹을 기세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날 해하지 못한다. 이빨을 내 팔에 박지 못한다. 괴물은 장님처럼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내 어깨에 구더기들이 옮겨 붙어 기어 다닌다. 난 여전히 멍한 상태로 혜원이의 눈만 바라보았다.
혜원이는 “안 돼! 안 돼!”하며 저절로 벌어진 턱을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아, 진짜였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 내 몸은 강한 힘에 눌려 바닥에 눕혀졌다. 내 얼굴 위로 구더기들이 마구 떨어져 내린다. 난 여전히 멍한 상태로 뱅글뱅글 도는 천장만 바라보았다. 곧 잡혀 먹혀 죽게 된다는 생각만 했다. 지금 이 충격이 너무 커서 비명조차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은 날 눕혀 제압한 상태로 이빨을 마구 부딪치며 두리번거릴 뿐, 잡아먹질 못한다. 괴물은 날 제압한 상태로 몹시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틀림없다, 불안해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들어온다.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 박효주, 봉준호감독……. 그리고 미팅에 참여했던 미국인 세 사람. 저 사람들이 여길 왜 온 것일까?
“사, 살려 주세요……. 가, 감독님…….”
겨우 내뱉은 순간이었다.
“킥, 내가 그렇게 변신을 잘했나봐? 이봐, 난 봉준호감독이 누군지도 몰라.”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악몽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사람 가죽을 벗더니, 괴물이 되어 내 몸에 달라붙는다. 난 내 몸 어딘가가 사나운 이빨에 의해 곧 뜯겨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지독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 끔찍한 생각처럼 혜원이의 비명소리도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고통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눈을 번쩍 뜨고 혜원이와 눈이 다시 마주친 순간, 누군가가 또 들어왔다. 내 베스트프렌드였다.
“이번 먹이는 정말 오래 걸렸네. 이놈의 룰! 정말 지겨워!”
난 친구가 하는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새로운 괴물의 등장이었다. 발음이 새는 혜원이의 비명소리와 절규는 내 놀라움을 대신 말해준다. 난 친구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친구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까르마가 이쪽이 아니라 이쪽인 걸?”
난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을 각오했다.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모든 것이 평화로워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괴물들은 날 뜯어 먹고 있지 않았다. 내 친구는 최초의 괴물(혜원의 어머니)의 목을 뜯어 숨통을 끊고, 다른 괴물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잡아 뜯어 먹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최초의 괴물은 살아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대신 잡혀 먹혀 몸부림치는 그 괴물을 보며 전복을 다듬던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난 시키는 대로 했다. 전복이 죽으며 원한에 사무쳐 내뱉은 까르마는 내가 아닌, 그 괴물(혜원의 어머니)에게 씌어진 것이었다.
“이젠 널 먹을 차례야. 뭐 스스로 세 번 원해 룰을 깨주었으니, 날 원망 하지는 마.”
친구는 입 주변에 묻어 기어 다니는 구더기를 털어내고 가죽을 벗는다. 괴물이 되어 입을 마음껏 크게 벌린 순간이었다. 그녀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내려와 남은 다리를 씹어 먹는다. 저절로 벌어지는 턱을 억지로 부여잡고, 구더기와 함께 살점을 뜯어내 꿀꺽 삼킨다.
난 그 모습에 놀라, 더 이상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의식을 잃기 바로 전에 보았던 장면은 괴물들이 서로 싸우며 서로를 뜯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에게 뒤엉킨 원한의 까르마에 의해.
그녀는 날 살리기 위해 전복죽을 절대로 먹지 않았고, 또 날 살리기 위해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괴물의 다리를 억지로 뜯어 씹어 삼켰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거식증에 걸린 그녀만이 내 머리 맡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라고 그녀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난 침대 밑을 내려다보았다. 구더기들과 썩은 살점들이 여전히 사방에 튀어 있었다.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진짜 괴물을 찾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 소용없지만.
그 괴물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는다. 아마 내가 죽는 날까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악마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들만의 룰과 법칙이 있어서랍니다. 율(律)이라고나 할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