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 이야기 7
"어서 오세요~~"
돌촬영이 있다.
나이는 40대 후반정도에 마른 체격, 거무스름한 얼굴색, 딱 붙는 청바지에
블링블링 금팔찌와 금목걸이를 하신 아버님과 20대 정도로 보이는 베트남 어머니가 예쁜 딸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여기 평택은 다문화가정이 많다)
"아기가 낯가림은 없나 봐요?"
"네~ 아무나 보고 잘 웃어요~~"
"다해이에요~ 촬영 금방 끝나겠어요~"
후다닥 돌촬영할 한복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촬영준비를 서두른다
백일 돌촬영은 스피드싸움이다.
아기들에게는 낯선 공간인 데다, 낯선 의자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이기에
그 안에 부모님과 함께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웃기고 움직이며 , 카메라에 시선을 집중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평생 동안 기억될 단 한 장의 사진이 나오게 된다.
이제 나이가 먹긴 하나 보다. 아기촬영 한 개 하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이럴 때는 떠오르는 분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은사님. 대전에서 사진관을 하시는데,
아기촬영하면 무릎도 아프고 너무 힘드시다고 하신다.
60이 넘으셨으니 이해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외모와 지성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게 세련되셨다)
사진관 위를 떠돌던 내 혼을 다시 붙잡고 카메라를 정리하고 있는데 ,
아버님이 세명가족사진과 아기랑 둘이도 촬영하고 싶으시데서 다시 후다닥 준비에 돌입한다.
(보통 아빠와 아기만 촬영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기가 기분이 좋은지 계속 웃어줘서 세명 가족촬영도 오케이!!
아버님이 예쁜 딸을 안고 촬영하실 수 있도록 세팅해 드리고 카메라로 돌아와서 ,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갑자기 아버님이 크게 웃으시더니 소리 내어 우신다!!!
(안 그래도 촬영 내내 부자연스럽게 크게 웃으셨다)
"어머! 왜 그래요. 좋아서 그러나 봐요"
어머님이 서툰 한국어로 눈을 흘기며 웃으신다.
마음에 먼가 가 훅하며 들어온다. 사연이 있으시구나..
눈물을 싹 닦으시더니 다시 크게 부자연스럽게 웃으신다.
눈은 너무나 슬픈데 입은 웃고 있는..
촬영을 다 끝내고 파일을 열어보려 컴퓨터에 앉았는데,
아버님이 옆으로 오시더니 살짝 얘기하신다.
내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이걸 안지가 일주일정도 되셨다 하신다.
아직 부인에게도 말을 못 했다며 나중에 이 사진으로 영정사진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신다.
아버님의 눈이 너무 슬펐다.
내 눈도 슬펐다.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는 베트남 엄마와 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빠의 슬픈 눈과 부자연스러운 몸짓.
(자신도 아직 사실을 못 받아들이시는데, 어찌 말할까...)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한 장면에 서있는 것 같았다.
가실 때는 아무렇지 않으신 듯 부인과 아기랑 웃으시면서 나가셨다.
"잘 부탁드려요.. "라는 말과 함께.
한참을 또 먹먹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예쁜 딸이 이제 한 살인데,
갑자기 둘을 놓고 가야 한다니.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정리를 하셔야 할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이제 접해서 자기 위로도 못하고 계시는데
아기 돌촬영을 하며 마음이 복받쳐 우셨던 거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늦은 나이에 품에 안은 천사를 이제는 못 지켜줄 것 같아 속깊이 복 닫쳐 오른 설움을..
사진관에 촬영하러 오시는 가족들 중에는 슬픈 사연을 안고 오시는 분들이 있곤 한다.
한분이 하늘로 먼저 가실날이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두 분 만의 사진을 남기시려 오셨던 60대 부부가 떠오른다.
두 분 다 점잖으셨고, 사이도 좋으셨다.
같이 거울을 보시며 서로의 머리카락정돈을 해주신다.
뒷모습에서도 느껴졌다. 눈물을 스펀지에 가득 머금은 채로 이 순간을 오롯이 함께 웃으시며 남기시려는 마음이.. 참 아름다운 동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살면서 감당하고 싶지 않고 너무나 슬픈 일이다.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크가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해 상담을 하러 온 나이 지긋한 한 남성에게 얘기한다
(그는 아내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만약 선생님이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한 게 바로 선생님입니다. 그 대가로 지금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돌아기 아빠의 연락은 그 이후로 없다
연락 올까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다.
잘 완쾌하셔서 사랑하는 가족과 환하게 웃으시며 재밌게 지내실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