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청운을 벗어난 발끝

숨결보다 가벼운 움직임

by 묘월



이튿날, 연무장을 내려다보는 하늘은 청명하고, 스며드는 햇빛은 전날보다 한층 더 따뜻했다. 송건이 두 손을 뒤로 하고 걸어 나왔다. 그의 그림자가 돌바닥 위에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제3관문. 쌍봉 교합.”

송건은 청운보와 봉법의 조화 관건이라고 하면서 앞에 쌓인 죽봉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오늘은 목봉 대신 청죽봉(靑竹棒)을 쓴다. 가볍고 탄성이 좋다. 부상 위험은 없을 것이나, 너희 봉세가 어디로 흐르는지는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말이 떨어지자 제자들 사이에서 작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안이 명부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가벼운 탄력이 실린 그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통과자 스물다섯. 둘씩 짝을 짓는다! ”

제자들의 시선이 옆으로, 뒤로, 서로에게로 빠르게 오갔다.

“마지막 한 자리는…”

여안이 시선을 들어 회랑 아래를 봤다.

“사절께서 메워주시겠습니까.”

연무장에 짧은 침묵이 스쳤다. 월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시지요.”

막 짝이 맞춰진 제자들이 서로에게 봉을 맞대는 순간, 눈빛은 단숨에 ‘어디 한번 겨뤄보자’로 바뀌었다.


청죽봉이 허공을 내리치는 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멀리서 들려오는 송림의 파도 소리와 뒤섞여 진짜 한바탕 막이 오른 듯했다.


동쪽 조는 그야말로 구경거리였다.

한 명은 꿀통을 털고 나온 원숭이처럼 날래게 뛰어다니며 청운보로 좌충우돌했다. 봉 끝으로 상대의 귓가를 스치며 장난스럽게 외쳤다.


“형님, 어깨 좀 빌려줘요! 한 번 찔러보게!”


반면 그의 상대는 산등성이에 뿌리내린 노송 같았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철벽같이 막아냈다. 기다리고, 또 버티다가, 상대가 점점 기운이 빠질 즈음 봉으로 땅을 톡 짚더니, 일순간 뒤로 회전하며 봉 끝으로 상대의 손목을 찰싹하고 쳤다.


“뛰느라 지쳤지? 이제 내 차례다.”

서쪽의 두 사람은 그보다 더했다.
공격하는 쪽은 이기겠다고 초반부터 속전속결을 외치며 허공을 밟아댔다. 공중에서 휘두른 봉풍이 연무장 돌바닥 위의 먼지를 훅 날릴 정도였다.


하지만 착지하기 전, 수비하는 쪽이 봉을 가볍게 뻗어 발목을 슬쩍 걸었다. 마치 바람에 팽팽히 맺힌 연줄을 가볍게 한 번 당기듯 은 싣지 않았다.


“청운보는 구름을 밟는 거지. 터뜨리는 게 아니고.”


“으악-”


공격자는 비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문제는 그것이 세 번째 접지였던 것이다.


“세 번 떨어졌으니, 패배!”


조뢰가 손에 든 봉으로 바닥을 탁 짚으며 말했다. 공격자의 얼굴이 익어가는 감처럼 벌게졌다.

가운데 조는 더 가관이었다.
반 장을 넘게 겨루었는데 승부는 안 나고, 오히려 둘의 호흡만 더 맞아갔다.


“유하소(流霞掃)!” 하고 쓸면
“선운설(旋雲泄)—” 하고 흘리고,
“천운착(穿雲戳)!” 하고 찌르면
“향운합(香雲合).” 하고 받아내며 틈틈이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결국 수비하던 쪽이 봉 끝으로 상대의 어깨를 살짝 톡 건드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러다 봉 끝으로 바구니 하나 짤 판이야.”


여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승패는 났다. 다음 조 들어와라.”

탁, 탁- 청죽봉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젊은 제자들의 기합, 간간이 터지는 웃음이 뒤섞였다. 그들에게, 검은 아직 멀었고, 세상은 아직 넓으며, 뽐내고 싶은 마음은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았다.

쌍봉 교합에 나선 봉들이 허공에 그은 푸른 물결로 연무장이 가득 찼을 무렵, 마지막 한 조가 연무장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변의 소란도 이 순간만큼은 잦아들었다. 월연의 상대는 운해문에서도 손꼽히는 상위 제자였다. 체격은 월연보다 한 뼘 넓고, 폭발적인 기세까지 갖춘 그가 봉을 들어 올리자, 대기에는 묵직한 파장이 감돌았다.


상대는 봉을 비스듬히 세워 올린 뒤, 손목을 아주 미세하게 틀며 봉세를 잡았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숙련된 무인 특유의 침착한 강기가 맴돌았다. 월연은 곧은 자세로 봉을 앞에 들고, 적막한 고요 속에서 눈동자만으로 상대의 운봉궤(運棒軌)를 잡아냈다.


두 사람의 봉이 툭툭 가볍게 맞닿았다. 힘을 겨뤘다기보다 서로의 감각과 운율을 탐색하는 듯한 접촉이었다. 월연은 상대의 호흡, 팔 힘의 결, 발의 미세한 이동까지 모두 빠르게 읽어냈다.


운해문 제자가 손목을 틀자, 들려 있던 봉 끝이 마치 영묘한 뱀이 혀를 내밀 듯 직선으로 월연의 심구를 찔러왔다. 월연은 손목을 비틀어 봉을 가로세우며 받아냈고,


“퉁-”


청죽봉의 맑은 소리가 터졌다.

힘의 충돌은 고르게 흘렀고, 두 사람은 동시에 힘을 빼며 봉을 거둬들였다. 그 일련의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 마치 예행연습처럼 정확했다.

두 번째 교봉. 상대의 봉 끝이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역세(逆勢)를 그리며 솟구쳤다. 바람결이 휙 하고 월연의 허리춤을 스치며 지나갔다.


월연은 반보를 틀며 봉을 내려 그 기세를 묵직하게 받아냈고, 두 봉은 다시 한번 정면에서 힘을 맞댔다. 파고드는 기세에서 잘 다져진 강기가 느껴졌으나, 월연에게는 피비린내를 모르는 자의 순수함일 뿐이었다.

잠시의 교착 후, 둘은 동시에 장봉을 거두며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만 호흡이 미미하게 거칠어지고 서로의 눈빛엔 초반에는 없던 경계가 어렸다.

세 번째 맞부딪침의 초반 기세는 앞의 두 번과 다를 바 없었다. 운해문 제자가 발끝으로 돌바닥을 강하게 딛고 경공으로 몸을 띄웠다. 봉에는 조금 전보다 한층 강한 기세를 실렸다. 그는 미끄러지듯 나아가며 곧바로 월연의 얼굴을 향해 파고들었다.

월연이 봉을 들어 응세하려는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발끝에 힘을 주어 뛰어오를 때 반들한 돌바닥에서 미세하게 삐끗하였던 것이다. 그는 공중에서 균형을 되잡아 보려 하였으나, 중심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원래라면 봉을 되돌려 세워 공격 자세를 펼쳐야 했으나, 틀어진 중심축 탓에 기세와 내력이 비틀리며 장봉 끝으로 쏠렸다.


곧게 찌르듯 들어와야 할 봉 끝이 갑자기 괴상한 곡선을 그리며 엇나갔다. 그 비틀린 궤적 끝에서 봉 끝은 월연의 목을 향해 거침없는 기세로 낙하했다. 휘익- 소리가 바람을 찢었다.


거리는 고작 몇 치. 그 순간, 월연의 눈동자가 살짝 수축했다. 본능적인 경계, 그리고 아주 희미한 놀람이 비쳤다.


차가운 봉풍이 이미 목을 스치고 있었다.
청운보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때였다.

쓱-

월연의 발끝이 지면을 미묘하게 스쳤고, 보이지 않는 실에 끌려간 것처럼 몸이 아주 가볍게 한 번 반회전 했다.


뛰어오르지도, 급히 물러나지도 않았다. 상체는 흔들리지 않은 채, 의복 자락은 반회전하는 궤적을 따라 희미한 곡선을 그렸고, 머리칼은 목덜미에 조용히 붙어 흔들림조차 절제되어 있었다.


분명, 몸을 돌려낸 것뿐인데 마치 일순간 사라졌다 나타난 것처럼 봉의 궤적을 비켜서 있었다.
장봉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쾅-하고 바닥에 내리 꽂혔다. 깨진 죽편과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지도사님, 아까 다리는 이 각도로 두는 게 맞습니까?”


한 제자가 조뢰 옆으로 다가와 묻는 순간이었다.
조뢰는 눈썹을 찡그리며 허리를 숙이고 제자의 발끝을 잡아 돌렸다.


“아니, 이 각도라니까. 너는 맨날 이걸 못…”


그때, 쾅하고 봉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들이켜는 제자들의 기척에 그가 고개를 번쩍 들었을 땐 이미 월연은 봉을 바닥에 곧게 세운 채 태연히 서 있었다.


“우와…!”


제자들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 너 때문에 좋은 구경 놓쳤다!”


조뢰가 제자를 슬쩍 밀치며 투덜거렸다.

대련을 지켜보던 여안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월연의 발끝이 닿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동작 자체는 청운보와 닮아 있었다. 발끝이 가지를 스치듯 흘러가고, 어깨선은 가볍게 떨어지고, 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너무 고요했다. 마치 공기가 먼저 빠지고 몸이 뒤따라가는 듯했다.

북이 한번 울렸다.

“제3관문, 종료.”

북소리가 울리자 제자들이 봉을 내려두었다. 숨소리가 섞여 올라오고, 돌바닥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월연은 봉을 거두며 잠시 손을 내려다봤다. 여안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지나가며 푸른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청해록(靑海錄)
운해문편(雲海門篇) 기묘년(己卯年)

청운봉법 1차 시험 종료. 3 관문 통과자 총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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