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선 우리, 끝까지 저어라.

디자인어랑 산책갈까

by 디자인어

“한 노인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어쩌면. 아닐지도.”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노인 산티아고는 84일째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85일째 되는 날, 홀로 바다에 나가 며칠 간의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냅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히 고기를 얻기 위한 생계가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삶과 존엄에 대한 은유였습니다.


노인은 청새치를 사냥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고기야! 난 죽을 때까지 너랑 같이 있을 테다." ,

"고기야, 나는 너를 끔찍이도 좋아하고 존경한단다."

“하기야, 저 고기도 내 친구이긴 하지.”

노인의 속삭임은 다소 섬뜩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는 자연을 향한 존중과 끝까지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그려낸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역시 바다에서의 생존극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멈춰 섭니다.


“그래서, 호랑이는 정말 존재했을까?”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제시합니다. 하나는 소년과 호랑이의 브로맨스 여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살인과 식인을 동반한 잔혹한 생존담입니다.


감독은 관객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더 나은 이야기를 믿으라.”

파이가 택한 ‘호랑이와의 여정’은 결국 고통을 견디게 하는 서사의 힘, 믿음의 힘을 상징합니다.


두 작품은 겉으로는 생존을 다루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삶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묻습니다. 노인에게 바다는 존엄을 시험하는 무대이고, 파이에게 바다는 믿음을 증명하는 신화적 공간입니다.

결국 바다는 인간이 다스릴 수 없는 절대적 힘이자,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거울입니다.


『노인과 바다』는 패배 속 존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라는 냉혹한 선언일 수도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기적 같은 생존담일 수도 있고, “고통을 서사로 덮는 자기 위안”일 수도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독자와 관객이 어떤 바다를 선택하는가입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여러분에게도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을 겁니다. 디자인은 늘 답이 없는 바다 위에서 배를 모는 일과 닮았습니다. 트렌드는 끊임없이 바뀌고, 현실은 내 이상을 쉽게 꺾으려 합니다. 그러나 노인과 파이처럼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 내 안의 진심과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는 태도입니다.


작업이 남들에게 어떻게 평가받든, 어떤 결과로 귀결되든, 스스로 떳떳하게 "내 노를 저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노인과 파이는 각자의 바다에서 버텼습니다. 결과가 무엇이든, 그 시간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요?

“바다는 언제나 우리보다 큽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바다 위에서, 노를 저어 나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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