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어랑 산책갈까
“저는 불안에서요.”
수업이 끝난 저녁, SW과 CH과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그날은 졸업전시 최종 발표가 있던 날이었고, 비까지 내려 한 끼를 나누기에 더없이 감도 높은 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취미가 뭐예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캠핑도 좋아하고, 재즈도 즐겨 듣습니다.”
그러자 SW이 물었습니다.
“왜 디자이너들은 재즈를 좋아할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재즈는 전경과 배경을 유연하게 넘나 드는것 같아요. 누군가와 대화할 땐 배경이 되고, 제가 음악을 들으려 하면 전경이 됩니다. 갑작스럽게 저를 방해하지 않고, 사람도, 일도, 음악도 몰입하게 해줍니다.”
얼마 전 Netflix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았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대사가 있었습니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는 이 영화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언급도 등장합니다. 티모시 샬라메를 스타로 만든 그 작품은 불안과 사랑이 교차하는 '그해, 여름'의 재즈 같았습니다.
티모시 샬라메의 또 다른 작품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는 쳇 베이커의 원곡 〈Everything Happens to Me〉가 흐릅니다. 삶이 계속 엇나가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랑마저 끝나버린 상황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쓸쓸하게 노래합니다. 불안정하고 쓸쓸한, 대도시의 정서 그 자체였습니다.
약점이란 결국 ‘불안’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그리고 문득 SW 학생이 했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은 동력이 어디서 나오나요?”
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불안에서요.”
불안은 나를 배경속에 머물게도 하지만, 동시에 전경으로 나아가게도 합니다. 재즈가 그러합니다.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즉흥과 불완전의 음악. 정해진 악보 대신 그때의 공기와 리듬에 몸을 맡깁니다. 그래서 저도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불안 속에서도 자신만의 흐름을 찾아가는 그 태도, 그것이 디자인과 삶을 대하는 제 방식과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모든 대도시는 재즈를 사랑합니다. 뉴욕, LA, 도쿄, 서울 그리고 자라섬? 모두 그렇습니다. 저도 여행지에선 하루쯤 재즈바를 찾습니다. 낯선 도시의 밤공기 속 피아노와 색소폰 소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불안을 느낀다면, 그건 정상이다. 그건 당신이 여전히 성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30가지 심리학 이야기로 풀어보는 UX디자인』 책에서는 부장님이 주말마다 등산을 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녹색 갈증,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도 하며,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의미한다. 생명체(bio)와 사랑(philia)의 합성어 ‘바이오필리아’.”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안전과 생계가 보장된 상황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고, 꽃은 식품(열매) 공급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과거 인간은 꽃을 선호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생계를 위해 꽃이 필요하지 않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꽃을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부장님이 산을 좋아하는것도, 우리가 꽃을 좋아하는것도 결국 진화과정의 기억 속 불안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새로운 조합이 태어납니다.
“불안은 성장의 다른 이름입니다.”
당신은 대도시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재즈를 사랑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