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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박세희 Jun 17. 2018

‘아빠’ 봉태규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아이와의 관계 — 부모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한동안 글을 안 썼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글로 남기고 싶은 ‘소재’가 별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 하고 총총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퇴근하면서 총총이를 데려온다. 집에 도착해서는 같이 간식을 먹거나 그림책을 보거나 하면서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다. 목욕 시키고 늦지 않게 재운다. 눈 뜨면 다시 아침.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루틴이고 안 좋게 말하면 쳇바퀴 도는 일상이다.


글을 쓸 뭉텅이 시간이 없었다. 총총이를 돌보는 시간에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총총이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어버리는 날들이 많았다. 어쩌다 같이 잠들지 않은 날에는 조용히 기어나와 설거지, 빨래 같은 집안일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나면 아직 풀지 못한 다른 ‘문제’들을 푸느라 머리가 바빴다.*


* 잠시 딴 얘기.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새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한다. 그건 나도 그렇다. 그래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일은 항상 쉽지가 않다.


그러다 오늘 모처럼 혼자 기차를 탔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잊고 있던 물음 하나가 솟아오른다. ‘나는 좋은 아빠일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만약 내가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었다면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내가 육아휴직 하고 총총이 육아를 전담하던 시기에 총총이와의 관계는 나에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당시 나의 역할은 퇴근 후 잠시 놀아주기, 주말 반나절/하루 혼자서 총총이를 돌보기 정도였으므로 화낼 일이 별로 없었다. 총총이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데 아내가 복직하고 총총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가 실질적인 ‘주양육자’가 되었다. 정확히 그때부터 총총이에게 화를 내고 또 화낸 것을 후회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 부끄러운 과정은 나는 오늘 또 한 번 못난 아빠, 아빠는 항상 미안하다,에 담겨있다.)


지금은 총총이에게 크게 화를 내는 일은 삼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생활 속에서 총총이의 일거수일투족과 부딪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인 ‘나’다. 그럴 때마다 총총이는 나에 대한 반감을 아주 세게 표현한다. 그 표현을 어른답게, 드라이하게 받아넘기고 싶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서운하다. 서럽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 그냥 허용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일관성’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 물러서도 괜찮은 걸까.**


** 아내는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오빠는 총총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봐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처럼 보여. 조금 더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다가 과도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을 '엄마의 신비'라고 한단다. 그런데 아빠들 역시 이런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과 가족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과 관련해서 오늘날의 남자는 여자보다 이런 갈등을 더 많이 느끼며, 특히 맞벌이일 때는 더 첨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제니퍼 시니어 지음, «부모로서 산다는 것», 261쪽).***


*** 이 책의 원제는 All Joy and No Fun이다. ‘육아’ 또는 ‘부모되기’를 이보다 잘 표현한 제목이 또 있을까.


일례로, 최근 아이와 함께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봉태규씨는, “드라마 촬영으로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니 아이가 섭섭했나 보더라”라며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같이 오래 있어야 하지 않냐”라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몇 주 전, 총총이 또래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그들도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과 가족, 특히 아이와의 관계에 관한 고민은 거의 모든 아빠들이 비슷하게 품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봉태규씨처럼 그 시간이 적으면 또 적은 대로.


가정마다 아이마다 부모마다 제각기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를 보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것’과 ‘아이와의 관계가 좋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짧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제야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 왔으니 총총이와의 관계가 단기간에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말고 언젠가 총총이가 다시 나에게 마음을 열어줄 것이라 믿고 끈덕지게 잘해주자는 것이다.


어떻게?

• 기다려주기.

• 총총이의 마음을 읽어주기.

• 한 번에 하기 힘들면 좀 더 쉬운 단계를 제안하기.

절대 강압적으로 하지 않기.

절대 큰소리로 화를 내지 않기.

• 아이를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훈육’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아이가 나와 함께 지금 여기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마음을 고쳐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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