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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인간

조금 이른 2025 회고

결혼 10주년. 특별한 선물을 하지는 못하고, 역에서 만나 10주년 축하 플랜카드를 보여주며 함께 사진을 남겼습니다. 사실 저의 선물은 일주일 만에 돌아오는 집이 아주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 상태를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아내가 가장 바라는 것임을 알기에.


처음으로 아내와 떨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오고 다시 부임지로 내려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아이들은 크게 어렵지 않게 적응했습니다. 주중에도 야근 등으로 엄마를 자주 만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요.


으레 하는 건강검진이었는데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고 수면 루틴을 잡고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 받아든 건강 성적표가 좋지 않아서 씁쓸했네요. 나름 건강하다 운동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게 저의 오만이고 착각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건강검진 전후로 아파서 앓아누웠습니다. 평생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마흔 직전에 이렇게 크게 한 번 아팠네요. 가족과 회사에 폐를 끼치고, 내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구나 다시 한 번 깨달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사의 지원으로 리더십 코칭을 받았습니다. What do you want? 평생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을 받아들었었네요. 덕분에 제 인생과 제가 이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있게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았습니다. 가시밭길,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 배움이 있고 의미가 있고 성장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회 주심에 감사했고, 기꺼운 마음으로 겪어냈습니다. 당당히 승리하였느냐고 하면 아직 그렇지는 않지만 저는 그 속에서 많은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지만 매일 느끼는 건 내가 이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그리고 아이들도 나에게 어마무시한 사랑을 주고 있구나. 감사하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루틴이 잡히니까 아이들과도 더 잘 지내게 됩니다.


첫째 아이의 최근 화두는 마술. 용돈만 생기면 마술 도구, 마술용 카드 산다고 하는 게 조금 얄밉고 걱정은 되지만. 그렇게 재밌게 하던 아이스하키는 중단. 둘째 아이는 뭘 해도 다 야무지게 해내서 별 걱정이 없네요. 나 피아노 학원 보내주세요, 해서 피아노도 재밌게 배우고 있고. 내년에는 둘째 아이도 드디어 학교에 입학!


아내와의 관계. 나는 이 사람을 정말로 존경한다는 걸 역시 느끼고 있습니다. 아내가 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에 감탄하고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본인의 건강을 조금만 더 챙겨주면 좋으련만. 운동까진 바라지도 않고 수면시간만 조금 더 확보하면 좋은련만.


올해 너무 바쁘게 일만 하고 지냈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5월엔 미국 샌디에이고 여행을 다녀왔고, 10월 한가위 연휴 때에는 부산 여행도 다녀왔네요. 아산에도 갔었고, 공주도 갔었고, 청평도 갔었고, 원주도 갔었고, 남이섬도 갔었고. 토요일 아침마다 텃밭 학교에도 참여했었네요!


2026년은 어떨까요. 큰 변화를 앞두고 있어 두려움과 불안함도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준비와 계획 뿐이겠죠. 막상 그때가 되면 그 준비와 계획이 타이슨의 펀치를 맞듯 쳐맞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그때 가서 수정하면 되죠. 무방비로 맞는 것보단 그래도 가드를 세우고 가면 숨은 고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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