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갈망
몇 해 전 할머니가 허리 수술을 받을 때 보호자 겸 간병인 역할을 했다. 척추병원은 고령 환자들의 구역이다. 70이 안넘으면 무조건 막내다. 병실에 들어서면 목에 허리에 보호대를 찬 고참들이 몇 년생인지 무슨 띠인지 묻고 순식간에 서열을 정리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최고령임을 확인하자 기세등등해졌다. 꼭 토끼띠라는 사실마저 자랑스러운 듯한 그 모습이 낯설고 재밌었다. 할머니가 토끼띠인 것도 나에겐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살면서 할머니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나의 두 할머니 중 한 분은 소나무가 많은 섬에 살아서 송도 할머니, 또 한 분은 복숭아나무가 많은 동네에 살아서 도화동 할머니라고 불렀다. 수백 수천번을 그렇게 부르는 동안 그들의 이름 석자는 희미해졌다. 토끼 해에 태어난 송도 할머니의 이름은 수성(水星)이다.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과 한자까지 똑같다. 어쩌면 내가 두 수성을 인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성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수성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해박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김수성 씨는 어떤 사람인가. 기억 속에 할머니 손에는 항상 주름이 많았다. 그래서 주름이 더 늘어도 나이 드신 줄을 몰랐다. 할머니가 만든 음식의 간이 바뀌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할머니의 감자버무리와 팥밥을 특히 좋아했다. 간간하게 소금 양을 잘 맞춰야 제맛이 나는 음식들인데, 더 이상 한창때의 절묘함을 재현하지 못하자 아쉬워하셨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셨던 것도 같다.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도 친구 집에 갈 때 음식을 해가셨다. 굽은 허리로 높은 부엌 문턱을 열심히 드나들었을텐데, 전처럼 친구들이 잘 먹지 않자 섭섭함이 폭발한 김수성 씨는 김치 부침개를 바닥에 내던지고 모임을 파토냈다. 요즘엔 서로들 연락하시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손은 빠르기도 빨랐다. 송도에서 명절을 보내다가 바다도, TV도, 오락실도 질리면 우리는 마루에 앉아서 다리세기 놀이를 했다. 이때 부르는 ‘새야 새야’로 시작하는 노래 장단을 할머니가 누구보다 제일 잘 살렸다. 그래서 김수성 씨는 마루에서 가장 인기 좋은 객원 가수였다. 나란히 놓인 다리 열몇 개를 두드리면서 빠르게 읊는 할머니의 노래 가사는 척척박사님한테 콜라 더 먹을지 물어보자는 내용만큼이나 엉뚱하다. 노래의 주인공인 새는 새끼를 다섯 마리 낳는다. 다섯 마리 중에 하나는 지져먹고 하나는 볶아먹다가 불이 붙어버려서 남은 새들이 꼬꼬댁 운다는 내용이다. 다리 위를 날아다니던 할머니 손이 ‘꼬-꼬-댁!’ 하면서 탁 멈추는 순간이 너무 짜릿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새야 새야 나방구 새야
니 어디 갔드노
새끼 치러 갔드라
몇 마리 쳤노
다섯 마리 쳤다
지져먹고 볶아먹고 나란마리 불이 붙어
달고댁시 꼬꼬댁
송도 할머니는 자식을 셋 낳으셨다. 손주는 넷이다. 할머니는 자식 손주들이 주는 선물이면 무조건 다 좋다는 그런 분은 아니다. 맨날 옷이 없다고 해서 사다 드리면 칼라가 흐늘흐늘하다거나 색이 칙칙하다거나 무늬가 너무 요란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옷장에만 넣어두셨다. 그래서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여러 벌 골라가면, 할머니는 받아서 한 장 한 장 들춰보고 ‘그래 고맙다’ 한마디 돌려주셨다.
할머니의 취향은 모호하기만 했다. 송도에 가면 할아버지는 늘 KBS를 보고 있었다. 화면 속 사람들이 과거의 유물을 들고 나와서 진품인지 명품인지 토론했다. 어떤 사람은 세계 곳곳을 여행했고, 또 누군가는 단신으로 사업을 일으켜 금탑을 쌓고 이름을 날렸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반복됐다. 그때 할머니도 옆에 앉아 재미있게 봤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를 보낸 후 TV 앞에 홀로 앉은 김수성 할머니는 TV조선의 열렬한 애청자로 드러났다. 여러 번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의 역사를 줄줄 꿰고, 뉴스와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아마 걸음에 힘이 남아있는 한 꿋꿋이 과거의 영광에 표를 던지러 가실 것이다. 표가 향하는 곳은 그리운 과거일까 아니면 허구의 영광일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관이 화장장에 들어갈 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한번 사는 인생 화려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봉안당 가는 길에도, 유골함 앞에서도 몇 번이나 같은 말로 한탄하셨다.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화려하게 살길 원하셨구나. 나는 팥밥, 감자버무리, 다리세기 노래 같은 소박한 것들로 할머니를 떠올리지만 사실 김수성 씨가 손에 쥐고 싶었던 건 화려함이었구나.
나는 계속 기다리고 싶다. 앞으로 할머니가 화려함을 손에 넣을 기회가 영원하고 무한할 것이라 전제하고 싶다. 내가 할머니에게 화려함을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물어볼 것이다. 이게 할머니가 말한 그 화려함이 맞는지. 매일 입고 다니실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