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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Feb 07. 2020

축록전 (逐鹿戰) 3

- 수말당초 군벌 쟁투, 대당제국 창업기

전회에 이어 말하자면,

우문화급과 이밀이 몰락한 가운데, 아직 중원에는 두건덕, 왕세충 등 건재한 세력이 많이 있는 상황이었다. 왕세충은 동도(낙양)와 이밀의 지역까지 완전히 장악했으며, 하북의 두건덕 역시 명주, 상주 등 하남성 지역들까지 차례로 점령하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당나라의 이연과 이세민은 중원의 군벌들과 대적을 앞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방에서 강력한 세력이 나타나 태원을 비롯 당의 북방지역을 휩쓸어가는 상황이었다. 태원은 이연/이세민의 거병지이자 고향인 최후의 보루같은 곳이었다.

 

유무주는 어떻게 갑자기 큰 세력으로 등장하였는가.

유무주는 본디 수나라의 요동원정군에 있었으나, 마읍태수 왕인공이 총애하여 그 아래 있었다. (마읍은 돌궐군을 막는 변방의 방어도시이다.) 그러나 유무주는 왕인공의 애첩과 사통하고 그 죄를 숨길 겸, 왕인공을 도리어 살해하는 배은망덕한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북방의 돌궐의 시필가한을 찾아가 신하를 칭하고 돌궐의 정양가한으로 책봉받게 된다. 동시에 당대 최강의 군대인 돌궐군을 지원받았고, 그는 돌궐에 조공품과 미녀들을 상납했다.

한왕 유무주

돌궐의 시필가한에게 신하로 칭하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당고조 이연도 시필가한에게 신하를 자청하고 돌궐군을 얻은 것과 하등의 다를 바가 없었다. 낙양 왕세충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사서는 중원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사실 당시의 초강대국은 돌궐이었고, 힘의 무게중심은 중원보다는 보다 북방에 있었다. 그들의 강력한 기마부대를 지원받지 않으면 중원의 게임에서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연도 시필가한의 돌궐군에 힘입어 장안을 장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설명을 넓히자면,

사실 북방 유목민족 세력을 빌려 중원을 통일하는 일은 조조로부터 시작되었으며(조조는 오환의 세력을 빌려 하북을 통일했다.) 소위 남북조 시대에서도 북제와 북주가 서로 다투었는데 어느 누가 돌궐의 힘을 얻느냐에 따라 승부가 달라졌다. 두 나라는 돌궐에게 경쟁하듯 조공과 미녀를 바쳤고, 당시 돌궐의 가한은 '남쪽(중원)에 짐을 장 봉양하는 두 아들(북제/북주)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라며 중국으로부터의 사대를 즐겼다.


하북과 중국을 통일한 북위, 수, 당 모두 북방에서 돌궐과 공존하던 선비계열(탁발선비)이 세운 나라이기에 돌궐과 섞여서 왕좌의 게임을 벌이는 것은, 당시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시각이다. 오랫동안 중화사상 중심의 중국측 시각으로만 본다면 변방의 오랑캐를 불러들이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북위의 우문씨, 수나라 황족 양씨, 당나라 황족 이씨 등은 모두 무천진 군벌 출신의 탁발선비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페르시아나 유럽에서 북위, 수, 당까지 모두 타브가치(탁발)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위(북주)군 모습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와,

돌궐에게는 정양지역의 왕이라는 정양가한이라는 칭호를 받고 돌궐의 한 세력으로 자리잡은 유무주지만, 중원을 향해서는 한나라라고 칭하며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유무주에게는 송금강과 울지경덕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먼저 두건덕과 자웅을 겨루던 중소군벌 출신인 송금강이 두건덕에게 패하고 유무주에 의탁했던 것이다. 유무주는 돌궐군을 송금강에게 주어 남하하며 각 요처들을 점거해갔다.


남정에 맹활약하던 울지경덕이라는 인물은 선비족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장수로 기록되는데, 울지경덕의 위맹이 얼마나 얼마나 뛰어났던지, 당고조는 울지경덕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경원시하고 있었다. 훗날 그의 라이벌 진숙보가 붓을 들어 울지경덕의 초상화에 먹칠하고는 울지경덕과 자웅을 겨루는데, 그들의 대결은 이 스토리의 백미 중 하나이다.


춘분을 관장한다는 울지공


각설하고, 유무주의 세력이 강력하고 위협적이었던 것은 비단 돌궐이라는 강병을 얻어 남하하는 것도 있었지만, 주변 세력들과 연합하여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들어갔기 때문이다.

유무주는 삭방에 있던 중소군벌 왕행봉과도 손을 잡아 같이 당을 침범하고 있었고, 동시에 시필가한의 돌궐세력도 휘몰아쳐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유무주가 보낸 송금강의 군대는 제일 먼저 당나라의 근원지인 태원을 공략했고, 당시 태원에는 당태조 이연의 세 아들 중 막대인 이원길이 지키고 있었는데, 송금강의 군대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이원길은 요새인 병주로 군대를 물린 뒤, 병주성에서 버티었으나, 송금강과 울지경덕의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몰래 가족과 몇몇만 데리고 병주성을 탈출하여 장안으로 도망갔었다. 자신을 따르는 당군을 버리고 가족과 먼저 달아난 이원길은 그의 작은 형 이세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요새였던 병주성도 결국 함락되고, 송금강의 군마가 착착 거점들을 점거하고 있었다. 왕행봉도 당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돌궐군 역시 당의 영역에서 마음껏 휘저으며 압박하니 장안에 기거하던 당고조는 두려움을 금치 못하였다.


당 경기병 (둔황의 벽화)

한편, 진왕 이세민은 당시 정왕 왕세충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부왕의 호출을 받고 다급하게 군마를 돌려 장안으로 돌아왔다. 일부 군대는 여전히 남아 왕세충의 세력을 막아야만 했고, 이세민은 북으로부터의 위기를 넘겨야했다.


당고조 이연은 유무주의 군마가 너무 거세고, 사방에서 적들에게 당하는 형국이니, 황하의 동쪽 (즉, 태원, 병주 등 유무주가 뺏어간 지역)은 포기하고 주변을 수습하자는 주장을 하였지만, 이세민은 황하의 동쪽은 관중이나 농서지방과 달리 풍부한 물산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전쟁의 신, 이세민은 다시금 군대를 몰아 북으로 향했다.

그는 송금강의 남하를 막아야했다.

이세민은 그 전에 먼저 돌궐과 왕행봉부터 처리하기로 한다. 왕행봉과 돌궐군을 몰아내어 유무주군과 호응하지 못하게 해야했다.


이세민은 당대의 제갈량 이세적으로 하여금 왕행봉을 먼저 처부수게 하였다. 이세적은 왕행봉을 처부수러 떠났다. 또 돌궐이 물러서게 하기 위해 곽효각을 보내 무엇인가 획책을 시도한다.

  

시대의 제갈량 이세적과 서역전문가 곽효각은 어떻게 유무주의 수족을 자를 것인가?


4부에 이어.


축록전 1: https://brunch.co.kr/@goldsmiths/23

축록전 2: https://brunch.co.kr/@goldsmiths/24

축록전 4: https://brunch.co.kr/@goldsmiths/26 

축록전 5(완): https://brunch.co.kr/@goldsmiths/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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