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은 공부를
내가 뮤지컬 중에서 제일 좋아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지킬 앤 하이드.
대중들은 그저, 넘버의 화려함에 속아 극의 결점을 모르고 소비하는데, 내가 싫어하는 모든 요소들은 다 들어가 있어 당장이라도 불매운동을 하고 싶지만 능력 부족으로 그러지 못하는 중이다.
그런 지킬 앤 하이드, 뭐가 문제인지. 극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풀어보겠다.
(우선, 천안 공연을 보러 간다. 내가 사랑하는 이지혜 배우님이 엠마로 공연을 하시기 때문에.)
우선 신랄하게 내 트위터 계정에 지킬이 하남자인 이유를 적어 내려갔다. 봐도, 봐도… 범접할 수 없는 저런 하남자 캐릭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리 예스톤 버전 “팬텀”의 에릭이 상남자 of 상남자로 느껴질 정도… 야이 에릭은 기형적인 외모로 고독했지만, 지킬은 잘생기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귀족이잖아. 근데 둘이 왜 이렇게 달라. 에릭 그런 환경에, 그런 외형에… 그 정도로 자란 걸 칭찬해 주고플 정도임…
목차
1. 지킬이 왜 하남자인가.
2. 그 극을 왜 소비하면 안 되는가
3. 극단에서 있었던 일
4. 제발, 작품 공부 좀 해주세요.
~어제 신랄하게 쓴 지킬 하남자 이야기~
지킬이 하남자인 이유……………..
엠마 없으면 엉엉 울면서 실험도 못했을 거라고 함
님 책임이면 누구한테 기대지 말고 스스로 해내란 말이야 그게 상남자임 상남자가 되고 싶었으면 루시를 레드랫에서 구해내고 그쪽 사창가 정도는 밀어냈어야 상남자다
하이드로 변하고 살인 살인 하면서 스파이더나 기네비어 같은 사람들 죽어나가야 상남자였다고
끽해야 하는 거: 지 실험 반대한 귀족 살해하기, 루시 도망갔다고 하이드일 때 살해하기
이게 하남자 아니면 뭐임
위선자 주교 살해했다고 정의인 거 아님~~~~~그런 게 나와서 착한 놈인 거 같지만 실상은 그냥 지킬이 아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의 수준이 위선자 죽이기였을 뿐…
그와는 별개로, 실제 “악”이라 불리는 사창가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게 지킬이 하이드일 때 한 행동 중에서 의문인 포인트임 아랫것들은 악행도 악행이 아닌가 보지
하 그런 하남자 불쌍하다며 사랑해 주는 엠마도 그렇고 그딴 하남자가 잘해줬다며 간도 쓸개도 내줄 듯 사랑에 빠지는 루시도 그렇고 지킬 그 하남자는 무슨 복을 받았길래? 그런 포상을? 받지?
헨리 지킬 이런 제길 자넨 천사의 미소 엠마를 놀부심보로 가져갔으며 그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음 그런 미소 천사를 기다리게 만들며 마음 앓게 만들다가 약혼식 때 늦고 심지어 결혼식 때 죽어? 세상에 이런 민폐 하남자가 어디 있음
글 한 줄, 한 줄에 분노가 느껴진다. 날 루시로 캐스팅한 그분이 제발… 제발… 작품 보는 눈 좀 올렸으면 좋겠고… 난 진짜 너무 화가 나서 그때 안 마시던 술과 망가져가는 마음을 안고 엉엉 울면서 지냈었다. 아니 작품을 하고 싶으면 윤리 공부도 같이 좀… 제발… 내가 그때 힘들어하던 게 안 보였나. 단체로 이상한 걸 못 느끼는 것 같아서 갑갑했다. 기껏 고마움에 도와주러 갔더니, 연기는 맡겨놨나… 내가 제일 못하는 관능적인 연기를 시키고…
페미니즘 공부를 조금만 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루시와 엠마 역할이 얼마나 구린 역할인지 알 거다. 수동적이고,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 뮤지컬 덕후 계에서도 이 두 역할을 자기가 아끼는 여배우에게 주지 말라며 아우성이다.
물론,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렇게 설계된 게 이해는 간다. 지킬 앤 하이드와 동시대의 작품 “레드북”이 나와서 묻혀있던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풀어냈으니, 덜 억울하긴 하다.
“그럼, 일단 창작물이니 봐도 괜찮잖아요. 님 현실과 작품 구분 못하세요? 한심하네.”
“음악 좋고, 배우들도 공연하잖아요! 우리가 보는 게 뭐 어때서요!”
예술은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다. 그리고, 대중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창작물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단순 도파민 분비를 위한 음악과 자극적인 스토리로 봐주기엔, 이 작품에는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지킬의 무책임함, *사창가*라는 드러내서는 안 되는 요소가 나오는 점, 사람이 무자비하게 죽어나가는 점…
>>귀족<< 하남자의 일대기, 무능함, 사회비판을 하고 싶었다면 일단 성공은 했다. 하지만… 저 작품에서 드러난 불편한 요소들은 비판받기는커녕, 넘버들의 중독성만이 알려지니… 내가 답답해하는 이유다. 노래에 속지 말라고!! 제발!!! Alive2 속 시원한 거 알겠다고!!! 파사드, 머더머더 좋은 거 알겠다고!!! 이제 작품의 문제점을 봐달라고!!!!!
내가 이 극을 보며, 잘 만든 벨벳 커튼이 찢어져 있는 걸 보는 것 같다는 것도 이거다.
너무… 너무 잘 만들었는데, 보기 싫고 흉하다. 고급진 재질의 원단을 낭비한 느낌이 든다. 음악은 이런 곳에 쓰이면 안 되는데…
이 극을 소비하면 안 되는 이유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단순 넘버가 좋다는 이유로 사랑받아선 안된다. 저 작품을 볼 것이라면, 시대적 아쉬움을 공부를 하고 충분히 윤리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성을 틀렸네? 이거 성희롱이잖아! ㅋㅋㅋㅋ”
이건 카톡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의 단원 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런 카톡을 보내며 웃는 모습이, 거리감을 두게 했다. 따로 말하지 못했지만, 이런 가벼운 농담으로 저 단어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루시 역할은 정말 정말 힘들었다. 노래는 아름다워야 하며, 지친 삶을 꾸며주어야 하는데, 그걸 이런 데에 쓰다니… 내 가치관이 짓밟히는 느낌이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이런 걸 모를 거다.
더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단 말을 아끼려고 한다. 언젠간 수면 위로 드러나겠지…
이 자리를 빌려 제발 기도한다… 나 자네를 믿어왔네… 내 진심을 받아주게… 뭐가 문제인지 내가 왜 그리 욕하고 화가 났는지 제발 알아줘라… 제발… 부탁이에요…
대중문화 예술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나는 성우연기를 배워 저것을 직격으로 받아온 위치다. 그러니 저런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소비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와 철학으로 예술을 해야 하는지… 만드는 사람도, 소비하는 사람도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