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모험이라도 하는 아재는 그래도 청춘이다.

[점심 먹으며 뻔뻔함을 충전합니다] #1 벚꽃맛집 오픈런

by 감자댄서


1.


나는 직딩 아재입니다. 그리고 올해도 벚꽃 시즌이 왔어요. 직딩들에게 벚꽃을 만끽할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점심 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회사 근처 벚꽃 피는 곳을 가보는 정도... 그러나, 그런 곳을 가더라고 점심 시간에는 나같은 직딩들이 넘쳐나요. 벚꽃 구경이 아닌 직딩 구경이에요. 그러다 보니, 어디 가서 '나 올해 벚꽃 봤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올해만큼은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벚꽃맛집'에 가고 싶었어요. 인스타에 넘쳐나는 여기저기 벚꽃맛집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어요. 벚꼿맛집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행복 x Happy x 행복'해지는 환상에 빠졌어요.


나 결심했어요.

벚꽃맛집 카페에 가서 단 30분이라도 거기에 머물러보자고 말이예요.


그러면, 내가 가볼 수 있는 벚꽃맛집이 어디인지 리스트를 만들어봤어요. 연남동벚꽃집, 대흥동 디어모먼트, 합정 그레이랩, 합정 키쉬미뇽... 사람들의 방문기를 보니, 모두 오픈런을 해도 웨이팅을 했다고 하더군요. 즉, 벚꽃맛집에 가려면 오픈런을 해야 하고, 오픈 시간보다 넉넉하게 일찍 가야 안전하게 웨이팅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네요. 그것도 평일 오픈런을 해야 하고요.


음... 나같은 직딩 아재가 과연 그곳에 갈 수 있을까요?




2.


지금까지 평생 나는 벚꽃맛집 오픈런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런 이유 때문이예요.


번째, 혼자 오픈런 가는 것이 정말 쑥쓰러워요. 벚꽃맛집은 모두 유명한 핫플이라, 혼자 가기에는 좀 그렇거든요. 다들 친구 또는 연인들과 오는데 말이예요. 그것도 나는 나이 많은 직딩 아재잖아요. 20대들만 있는 곳에 혼자 가기 부끄러워요.


번째, 벚꽃맛집 가서 사진 찍어 오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임팩트가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그냥 인스타용 뽐내기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벚꽃맛집 뽀개기로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세번째, 난 직딩이잖아요. 평일 오픈런하면 연차 휴가내야 해요. 그리고, 벚꽃은 결국 2~3일 그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데 그 타이밍에 바쁜 일이 있으면 연차 오픈런 불가능해요.


이런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결정했어요. 금요일에 연차 내고 오픈런을 하자. 장소는 합정 그레이랩... 왜냐하면, 여기는 10시 오픈이라서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11시 오픈하는 '연남동벚꽃집'과 '디어모먼트'가 오픈런 인기 1순위이니까요.


가자, 가자, 가자.. 그레이랩으로~~

쑥쓰러운 마음은 접어두고 GoGoGo!




3.


아~ 떨린다.


9시 30분 합정역에 내렸어요. 마음 속 소심이는 계속 쉬지 않고 말을 합니다.

"혼자 쪽팔리지 않니? 아재 혼자 여기 오는게 말이야."

"그냥 돌아가서 편하게 스벅에나 가.. 거긴 눈치 볼 일이 없잖아."


내 마음 속 소심이를 토닥이며, 한발 한발 그레이랩으로 다가갔어요. 모서리만 돌면 그레이랩이 보이는 곳까지 오자 내 소심이 목소리는 더 더 더 커집니다.

- 이미 웨이팅 줄이 있으면 어떻게 할 꺼니?
- 혼자 부끄럽게 웨이팅할 수 있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커플로 왔을텐데...
- 웨이팅 순서가 밀려서 벚꽃이 안 보이는 실내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할꺼니?
- 그냥 돌아가자~~


아.. 아..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모서리를 돌았아요.

9시 40분인데 과연 웨이팅 줄이 있을까요?

앗... ㅠㅠ


이미 웨이팅줄이 있네요. ㅠㅠ 그리고, 2~3팀도 아닌 6팀이나 웨이팅하고 있어요. 어쩌지.. 난 어쩌지.. 그냥 돌아가야 하나.. 오프런 실패한 건가..


마구 마구 날뛰는 소심이를 토닥이면서, 사진 속에서 본 그레이랩 벚꽃 정원을 생각해봤어요. 야외 테이블이 5~6개는 될 것 같았고, 2인용 테이블도 있었던 것 같으니까 대략 나까지 차례가 올 것 같았어요. 뻘쭘한 자세로 슬쩍 웨이팅 맨뒤에 섰어요. 앞에는 모두 다 여성 친구들 아니면, 연인들 이었어요.


아... 떨린다.




4.


9시 50분... 그레이랩 직원분이 나오셔서 먼저 들어가서 자리 잡고 주문을 해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웨이팅 순서대로 들어갔어요. 생각보다 테이블이 많아요. 나는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벽 쪽에 붙은 2인 테이블에 앉았어요. 어디가 좋은 자리일까 생각도 못할 정도로 쑥쓰러운 상태에서 그냥 앉았어요.


테이블에 앉아서 심호흡 3번을 했어요. 드디어 해냈구나. 마음 속 소심이를 이겨내고 드디어 벚꽃맛집 오프런을 했구나. 자리는 괜찮았어요. 벽 쪽에 붙어 있어도 시그니처 벚꽃 나무 옆이라서 사진 찍기 좋을 것 같았어요.


이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소심이가 또 말을 걸어요.

"여기에 혼자 온 사람은 너 하나야. 그것도 직딩 아재 남자는 이 공간에 너 하나야."

"음료 사진이나 하나 찍고 말어. 셀카 찍을 수 있겠니?"


나는 일단 떨리는 손으로 익숙한 척 셀카봉을 꺼냈어요. 그리고, 카메라 리모콘 블루투스를 연결했어요. 헉.. 그런데 블투 연결이 안되는 거예요.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마음 속은 불안과 쑥쓰러움 때문에 쿵쾅쿵쾅쿵쾅 16비트 심장이 뛰기 시작했어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가지 무기를 꺼냈어요. 선글라스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선글라스를 써서 다른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상황을 피했어요.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사람들의 소리도 막았어요. 내 눈과 귀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차단하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어요. 블투 연결도 다시 천천히 해봤어요. 성공... 셀카봉 착장도 성공...


그리고 주문을 하러 갔어요. 미리 주문할 음료는 정해놓고 왔어요. 여기 시그니처 음료인 애플티로 말이지요.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애플티 사진이 너무 이뻐서 이것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얼그레이 쿠키를 추가했어요. 나는 빵차장 아재인데 디저트를 안 먹으면 안되죠 ㅎㅎ


애플티가 나와서 자신감 한모금을 마신 후에, 벚꽃 배경으로 셀카도 찍었어요. 약간 소심하게... 그리고, 애플티 사진도 이쁘게 성공... 다양한 각도에서 벚꽃맛집 사진도 성공... 그러나, 삼각대를 활용해서 전신 셀카샷은 실패 ㅋㅋㅋ 그리고, 갤럭시의 AI지우개로 다른 사람들 지우기도 성공, 크하하하하. 다른 사람들을 지우니까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예요. 크하하하하하




5.


이제 나에게는 마지막 미션이 있어요. 뭐냐면, 나 자신에게 편지쓰기... 벚꽃맛집에 와서 심리적으로 쫄아있는 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생각했거든요.


감자댄서에게..


오늘 벚꽃맛집 오프런을 드디어 해냈구나.

짝짝짝~~~

쑥쓰러움을 이겨내고 해내다니..


뭐든지 그렇게 해내면 되지 않겠니?

쫄지마~!

넌 할 수 있어~!


작은 모험이 직딩 아재를 청춘으로 만들어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