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파트3

군대의 진짜 허리, '중사'라는 이름의 기억

by Yong

군대의 진짜 허리, '중사'라는 이름의 기억

ChatGPT Image 2025년 9월 1일 오후 01_29_19.png

군대를 떠올리면 흔히 장교와 사병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생각하지만, 그 거대한 조직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이다. 나는 군 생활 내내 실질적인 군대의 중추, 그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중사'라는 계급이라고 생각했다. 야전 경험이 풍부하고, 닳고 닳은 노련함으로 부대를 지탱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투박했지만 진짜였던 사람들

ChatGPT Image 2025년 9월 1일 오후 01_38_48.png


물론 내가 복무하던 시절의 부사관, 즉 하사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았다. 투박하고, 때로는 질이 좋지 않은 이들이 지원한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투박함 속에는 책상에 앉은 장교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짜 '짬'에서 나오는 지혜가 있었다.


예를 들어, 차에 문제가 생겨 정비대대에 간 운전병의 일화는 당시 중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인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에서, 정비관이었던 한 중사는 "내가 기름밥 먹은 게 몇 년인데 이걸 해결 못 한다고?"라며 자존심을 걸고 달려들었다. 결국 그는 기름 범벅이 된 채 원인을 찾아냈고, "너 제대할 때까지 이제 문제없을 거야"라며 쿨하게 먹을거리를 사주고 운전병을 돌려보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것을 몸으로 증명하는 것이 곧 명예였다. 보답을 원하지 않는, 그저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장인 정신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무서웠지만, 동시에 존경스러웠다. 병사들보다 월등한 체력으로 훈련을 이끌었고,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아냈다. 당시에는 사병으로 2년 가까이 복무하다 하사관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중사쯤 되면 실제 군 경험만 5년에서 7년에 달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병장 따위는 감히 비빌 수 없는 압도적인 경험의 격차가 존재했다.


물론 그들은 행정 업무에는 약해서 머리 좋은 사병들에게 서류 정리를 부탁하기도 했고, 대대장이나 중대장을 피해 '잠수'를 타는 기술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 양면성마저도 그들을 더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중사' 소대장과 야생의 생존술

ChatGPT Image 2025년 9월 1일 오후 01_42_20.png


나의 군 생활은 조금 특별했다. 내가 속한 90mm 무반동총 소대의 소대장은 원래 중위 계급의 장교였지만, 그가 사고를 쳐 징계를 받은 뒤 중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참들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 중위는 계급은 장교지만 마인드는 중사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연대전술훈련(RCT)이라는 중요한 평가 중에 대검 하나만 들고 더덕을 캐러 갔다가, 하필 시찰 나온 고위 장교에게 발각되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는 그가 얼마나 인간적인(?)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고참들은 그를 그리워했다.


내가 실제로 만난 '중사 소대장'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그는 중사답게 '짱박히는' 기술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민통선 안 부대 특성상 한 달에 한두 번씩 나가야 했던 수색·매복 훈련 때, 그는 교범에 나온 목적지 대신 자신만이 아는 명당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우리는 더덕과 달래를 캐서 나눠 먹었고, 비가 올 때는 버려진 벙커를 찾아 비를 피했다. 아마 갓 임관한 초임 장교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대대 본부에 무전을 날리는 타이밍을 '야성적으로' 맞추는 그의 감각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마치 실제로 모든 과정을 FM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고하는 그의 노련함 덕분에 우리는 불필요한 고생을 덜 수 있었다. 물론 부대 분위기가 좋지 않을 때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FM대로 움직이는 균형 감각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요령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상부와 병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진짜 생존 전문가였다.


지금의 중사, 그리고 변해버린 군대

ChatGPT Image 2025년 9월 1일 오후 01_44_35.png


요즘의 부사관은 과거와 다르다. 선발 과정도 까다로워졌고, 장기 복무는 더욱 어려워진 엘리트 직군이 되었다. 질은 좋아졌지만, 그만큼 행정적인 부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중되었다.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짧아지면서, 과거 사병들이 하던 잡무까지 그들의 몫이 되었다. 투박하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던 과거의 중사들은, 이제 행정 서류에 파묻힌 중간 관리자가 되어가고 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은 수많은 상상 초월의 인간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 안에서 내가 만났던 '중사'라는 계급은, 투박한 자부심과 야생적인 생존력으로 무장한, 군대의 가장 단단한 허리였다. 그들이 있었기에, 책상 위 작전 계획이 실제 야전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시대는 변했고 그들의 역할도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 기름 냄새와 흙먼지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그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keyword
이전 02화군대이야기 파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