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7시간, 4만 명을 죽인 전장의 원인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삶의 질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병이 있다.
죽을 병은 아니지만, 죽도록 신경 쓰이는 질환. 바로 치질이다.
요즘은 아침이 두렵다.
특히, 화장실 문 앞에 설 때면 공포는 몇 배 증폭된다.
미친 사람처럼 화장실 불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끈다.
하지만 생리 현상은 참을 수 없다.
결국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주문을 외우며 거사를 치른다.
변기에 앉자마자, 엉덩이에서 뇌수까지 파고드는 고통이 밀려온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은 벽을 긁고, 눈앞엔 별이 터진다.
전기 아메바들이 눈앞을 헤엄치면서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결과물과 함께, 엉덩이가 파열되는 산고를 멈출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그다음이었다 — 비데 버튼을 누른 뒤, 차가운 물줄기가 상처를 정확히 찾아오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욱신거림.
또한 앉지 못하니 일상은 무너졌다.
출근길 운전석에 앉는 것도, 회의실 의자에 앉는 것도 고역이었다.
서서 일하다가, 쪼그려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하루가 흘렀다.
몸의 작은 상처 하나가 삶 전체를 흔들어놓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게다가 변을 보는 것이 두려워 밥을 줄이다 보니 체력이 떨어지고,
결국 변비가 와서 하루가 엉망이 된다.
이게 바로 고통의 생태계다.
스스로 먹이를 줄여 멸종을 부르는 하체의 붕괴.
깊이 잠든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불발탄 경고’ 아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루이14세까지, 치질의 고통사
치질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등장할 만큼 인류와 함께한 고전적 질환이다.
기원전 1500년경 기록된 이집트의 ‘에버스 파피루스’에는 이미 아카시아 잎과 흙을 섞어 만든 연고로 치질을 치료하는 처방이 적혀 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항문 질환을 인류의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뜨겁게 달군 철제 도구를 항문에 넣어 치핵을 태워버리고, 잘라낸 부위엔 소변을 발라 치료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몸이 오그라든다.
중세 유럽, 수도사들은 벌겋게 달군 철 도구로 항문을 지지는 방식을 사용했다.
17세기 프랑스로 넘어오면, 치질은 왕의 문제로 격상된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관장과 연고, 거머리까지 동원했지만
끝내 치질이 낫지 않았다.
이때 궁정 이발사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가 나타나 루이14세의 수술을 성공시켰다.이를 위해 그는 6개월간 시골 감옥의 죄수 75명을 상대로 임상 실험하며 수술 도구를 완성했다고 한다.
# 제국의 몰락은 항문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 질환이 역사를 바꿔버린 가장 유명한 사건이 있다.
1815년 워털루 전투.
그날, 나폴레옹은 극심한 치질 통증 때문에 말을 탈 수 없었다.
보통은 전선에 직접 나가 세밀히 병력을 지휘하던 그가
좌욕과 아편 연고로 버티느라 천막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영국의 웰링턴 공작은 진군했고,
프러시아군의 증원이 도착했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한 패전이 일어났다.
전투가 벌어진 단 7시간 동안, 프랑스군은 4만 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냈다.
이를 두고 일부 호사가들은 “나폴레옹은 적보다 자신의 엉덩이에 패했다”고 혀를 차곤 한다.
생각해보면, 왕도, 황제도, 평범한 나도 결국 같은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
고통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웃긴 건, 그 치욕의 역사가 두 세기 뒤 내 화장실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엉덩이로 배운 사람(人)의 비밀
사실 이 지경이 되도록 병원을 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엉덩이의 깊은 곳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치질보다 더 무서운 건, 창피함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은 고통 앞에서 늘 무너진다.
견딜 수 없어 결국 병원 예약을 위해 병원 상담원과 상의를 했는데… 이럴 수가, 2주 치가 꽉 차 있었다. 내가 사는 하남은 외곽인데도 말이다.
알고 보니 나 같은 남자 환자들이 줄을 섰단다.
상담원은 여자 의사 쪽은 그래도 여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여자 의사 앞에서 엉덩이를 내밀 용기를 가진 남자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시간이 좀 걸리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예, 괜찮습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 몇 주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처방 후 약이 들어가니, 효과는 즉효였다. 대변을 누기가 편해지면서,
이렇게 아침이 기쁠 수가. 그제야 의자에도 앉을 수 있었다.
묘한 벅참이 밀려왔다.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걷고, 눕고, 앉는 게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 평범한 동작 하나가 그렇게 먼일이 될 줄은 몰랐다.
문득 ‘사람(人)’ 자의 모양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 한자가 상(商)나라 지배계층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피지배층은 ‘민(民)’, 지배층은 ‘인(人)’. 그래서 혹자는 이 ‘人’이 권력을 쥔 자, 즉 의자에 앉은 사람의 형상이라 주장한다.
물론 정설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편안함이라면, 왠지 납득이 가는 척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시 사람(人)으로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