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지사지 08화

호랑이, 공포와 경외의 이름

두려움을 신으로 만들던 시절의 기록

by 서필

예전에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을마다 전해 내려오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는 게 바로 ‘호랑이 이야기’였다.

어느 산골에 머릿결이 유난히 고운 처녀가 살았다.

매일 밤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달빛 아래서 빗질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산신이 반해 데려갔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늘 한 가지 진실이 숨어 있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간 것’이라는.

유족을 위로하려는 안타까움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에게 선택받았다는 억지스러운 부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 공포가 만들어낸 신


조선 시대에 호랑이는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그 가죽은 총칼로도 뚫기 힘들었고,

앞발 한 번 휘두르면 말 한 필이 나가떨어졌다.

산비탈을 내리달릴 땐 바람보다 빨랐고,

몸집은 송아지만 했으며 눈빛은 사람을 꿰뚫는 듯했다.

그런 짐승이 산을 지배하고 있었다.

산속에서 포효가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탱크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태종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경상도에 호랑이가 많아, 겨울부터 봄까지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영조 때도 한 도에서만 백여 명이 물려 죽었다.

왕이 사는 궁궐 안까지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조선은 호랑이가 살기 좋은 나라였다.

그래서 생겨난 직업이 바로 산척(山尺),

조선의 전문 호랑이 사냥꾼이었다.

나라에서는 그들을 모아 착호갑사라는 부대까지 만들었다.

호랑이에게 첫 번째 창을 꽂은 사람은 큰 상을 받았다.

때로는 벼슬을 얻기도 했고,

어떤 이는 평생의 신분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만큼 호랑이는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존재였다.

그를 잡으면 영웅이 되었고,

잡히면 뼈조차 남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경찰과 헌병 수천 명, 몰이꾼 9만 명을 동원해 대대적인 사냥을 벌였지만

1년에 호랑이 열 마리 남짓밖에 잡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영리하고 강인했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동시에 묘한 경외심이 자라났다.

그들은 호랑이를 ‘산군(山君)’, 산의 임금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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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에게 홀리는 과학적 이유


옛말에 “호랑이에게 홀렸다”는 말이 있었다.

사람의 눈을 빼앗고, 제정신을 흐리게 만들어

결국 제 발로 호랑이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호랑이를 봤다’는 이야기는 가끔씩 들려왔다.

어느 마을 아주머니들이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숲속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야옹아.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

그 말소리를 따라간 이웃들이 본 것은

집채만 한 호랑이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아주머니였다.

모두가 숨을 삼키기도 전에,

호랑이는 번개처럼 몸을 날렸고

아주머니는 그대로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말했다.

“호랑이에게 홀린 게야.”

그런데 이런 ‘홀림’에는 과학적인 배경도 있다.

가끔 어떤 쥐는 고양이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다.

두려움을 잃은 것이다.

원인은 ‘톡소플라스마’라는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뇌에 염증을 일으켜 겁을 마비시킨다.

결국 쥐는 고양이에게 다가가고,

그 몸속으로 들어간 기생충은 다시 번식을 시작한다.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데,

미세하게 성격이 변하거나 모험심이 강해지는 증상이 있다고 한다.

예전 사람들이 말하던 “호랑이에게 홀림”도

어쩌면 그런 생물학적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 사라진 산군의 시대


그 무시무시하던 호랑이는

19세기 말, 신식총이 보급되고

한 장 값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치솟자

돈벌이를 좇는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어

급속히 사라졌다.

특히 호랑이 가죽은 서양 귀족들의 사냥기념품으로 팔려나갔다.

그렇게 ‘산군’이 사라지면서,

호환(虎患)의 공포도 함께 잦아들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지금도 산속에선 그 울음을 들은 사람이 간혹 있다고 한다.

어쩌면 호랑이는 여전히 산의 주인으로,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무의식 어딘가에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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