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군인이 사랑한 맛
#프롤로그 | 달콤함은 전쟁의 언어다
나는 한때 영화 전문지에서 패션모델들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들은 ‘미와 멋’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아티스트들이었다.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극한의 식단과 훈련을 견디는 그들도,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달콤함의 유혹이다.
촬영 현장과 백스테이지에는 언제나 초콜릿과 연유를 듬뿍 바른 비스킷이나 빵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긴장을 풀어주고 지친 몸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전투식량이었다.
화보 촬영은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이틀 밤낮이 이어졌다. 런웨이에서 모델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철학을 워킹으로 구현해야 했다. 잠도,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건 높은 열량과 빠른 각성을 주는 달콤함이었다. 커피와 함께하는 초콜릿 한 조각이 곧 전투식량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모습이 전장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델들을 버티게 했던 것처럼, 군인들 역시 총알이 오가는 최전선에서 달콤함으로 사기를 붙잡고 공포를 잠시 잊었다. 달달함은 패션쇼의 무대와 전쟁터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인간을 지탱해온 힘이었다.
# 연유, 남북전쟁의 판도를 바꾼 감로수
연유 한 스푼에는 묘한 힘이 있다. 달콤하고 진득한 맛, 입 안을 감싸는 크리미한 질감은 어린 시절의 간식을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잠시 느슨하게 풀어준다. 커피에 넣으면 쓴맛이 사라지고, 팬케이크나 빙수 위에 올리면 하루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그래서일까. 베트남 사람들은 진한 커피에 연유를 아낌없이 풀어 넣는다. 쓴맛을 감싸는 달콤함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작은 위로가 되고, 오래 보관이 가능해 식탁 위의 실용성까지 더한다. 누구에게나 친근하지만, 동시에 추억과 문화가 배어 있는 특별한 맛. 그것이 연유다.
하지만 이 달콤한 맛이 사실은 전쟁터에서 ‘생명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말,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은 병사들에게 연유를 지급했다. 우유는 금세 상해 버렸지만, 연유는 우유를 농축하고 설탕을 넣어 신선한 상태로 장기 보관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작은 통 하나로도 칼로리와 영양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달콤한 맛이 지친 몸과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연유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병사들을 버티게 한 달콤한 무기였다.
연유를 받지 못한 남군은 북군을 부러워했다. 북군 진영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는 남군의 결핍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가끔 전투에서 북군의 보급품을 빼앗을 때면, 남군 병사들은 가장 먼저 연유 통을 찾았다. 그 작은 캔을 손에 넣는 순간만큼은 전장의 피로와 굶주림을 잠시 잊고 행복해했다. 달콤한 차이가 전쟁의 사기에도 알게 모르게 깊은 흔적을 남긴 셈이다.
몇몇 전쟁 사학자들은 북군이 남군에게 첫 결정타를 날린 계기였던 앤티텀 전투의 승리에도, 이 연유가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 북군에게 꾸준히 지급된 연유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전투 지속력을 높였다는 것이다. 포연 속에서 작은 캔 하나가 만들어낸 달콤한 위안이, 역사의 물줄기마저 바꾸어 놓았다는 해석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기억은 오래 남았다. 전장에서 생존을 지켜주던 연유는 곧 민간의 식탁으로 옮겨 왔고, 달콤한 맛은 전쟁의 상처를 덮어주듯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즐기는 연유빵 한 조각에는, 사실 전장을 건너온 달콤함의 역사가 녹아 있다.
# 초콜릿, 사랑의 묘약 VS 전투의 비약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초콜릿 한 조각. 그 달콤함 속에는 의외로 긴 사연이 숨어 있다. 신에게 바치던 제사 음식이었고, 전사들의 전투식량이었으며, 지금은 연인들의 고백을 대신하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날, 사람들은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전한다. 초콜릿이 주는 행복감은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초콜릿 속에는 ‘사랑의 묘약’이라 불리는 성분이 들어 있다.
페닐에틸아민(PEA)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을, 아난다마이드는 은근한 안정감을 불러온다. 양은 아주 적지만, 부드럽게 녹는 질감과 향, 달콤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작은 한 조각이 기분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초콜릿을 먹으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다.
사실, 초콜릿은 태생적으로 전쟁과 생존의 산물이다. 고대 마야와 아즈텍에서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왕족과 전사만이 누릴 수 있었다.
카카오 콩을 갈아 옥수수와 고추를 섞은 쓴 음료는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고, 전투 전 전사들이 마시며 신의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귀족이라도 전장에 나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었던 음료였으니, 초콜릿은 처음부터 전사의 것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음료를 유럽에 가져온 뒤 설탕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달콤한 초콜릿이 태어났다.
시간은 흘러 초콜릿은 다시 전쟁터로 돌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은 병사들에게 초콜릿을 전투식량으로 지급했다. 달콤한 간식으로 지친 마음을 달래고, 동시에 고열량으로 빠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초콜릿이 너무 맛있어서 병사들이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 거다. 비상식량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1937년, 미군 군수사령부는 허시에 특별한 제품을 의뢰했다. 조건은 간단했다.
고온에서도 녹지 않을 것
그리고… 맛이 없어야 할 것
결국 삶은 감자보다 약간 나은 맛의, 딱딱하고 쓴 초콜릿이 만들어졌다. 병사들은 ‘히틀러의 비밀 무기’라고 불평했지만, 정작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고립된 병사들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고, 동남아 정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으니까.
심지어 독일군도 초콜릿을 전투의 동반자로 삼았다. 그들은 ‘쇼카콜라(Schokakola)’라는 특수 초콜릿을 지급받았다. 카페인과 콜라 열매 성분을 넣어 만든 이 초콜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달콤함과 동시에 각성 효과까지 있어, 피로에 지친 병사들이 이 초콜릿으로 긴장을 풀고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전투를 위한 ‘비약’이었던 셈이다.
# 에필로그 | 달콤함의 역설
생각해보면 달콤함은 늘 전쟁과 함께 진화해왔다. 초콜릿과 연유는 물론이고, 별사탕·인공 감미료·커피믹스까지. 전쟁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발명품들이 지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준다.
하지만 모든 달콤함에는 그림자가 있다. 오늘날에도 달콤함은 여전히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동시에 경계해야 할 위험이 된다. 최근 연구는 우리가 즐기는 포도당과 과당, 즉 설탕이 암세포의 ‘완벽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도당은 암세포의 연료가 되고, 과당은 간에서 변형돼 세포막을 만드는 건축 자재가 된다. 결국 달콤한 당분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과하면 병을 키우는 독으로 변한다.
연유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도 사실은 설탕을 품은 산물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느끼는 그 한 조각이, 과잉이 되면 오히려 우리 몸을 병들게 할 수도 있다.
교훈은 단순하다. 사랑과 전쟁, 달콤함과 씁쓸함, 묘약과 독약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작은 연유 초콜릿 한 조각처럼, 인생의 맛도 결국은 ‘적당함’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