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지사지 04화

6천 년, 인류 문명을 지켜온 고양이의 발톱

by 서필
길냥이를 거두자, 쥐와 뱀이 사라졌다.


# 프롤로그,... 시골집 마당의 기적


어머니는 여든을 넘겨서도 시골집 텃밭을 지키신다. 손에 흙을 묻히며, 작은 밭을 일구는 일이 삶의 의무처럼 남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당에는 쥐들이 들끓었고, 하수관에서는 뱀이 고개를 내밀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집은 날마다 잠잠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처투성이 한 들고양이가 마당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불쌍하다며 개 사료를 내어주셨고, 며칠을 먹고 기운을 차린 고양이는 새끼를 배게 되었다. 그 뒤로 마당에는 다섯, 여섯 마리 고양이가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사료값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투덜대시면서도, 오래된 개집과 고무통을 개조해 고양이 집을 지어주셨다. 비바람을 피하고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작은 쉼터가 그렇게 마당 한켠에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텃밭을 파헤치던 쥐와 집안을 서성이던 뱀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늙은 노모와 길고양이들의 동거가 시작되면서, 시골집에는 고요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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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인류의 오랜 불청객


인류의 역사에서 쥐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먹을 것을 훔치고, 집을 갉으며, 전염병을 옮긴다. 우리 조상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에 논둑에 불을 놓아 쥐를 몰아내는 ‘쥐불놀이’를 했다. 하지만 쥐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현대에도 벌초나 성묘를 나설 때 주의할 병이 있다. 렙토스피라증, 한타바이러스 같은 낯선 이름의 감염병들이다. 쥐 소변과 배설물, 먼지로도 전염될 수 있기에, 야외에서 오래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위협이 된다.


# 흑사병과 고양이의 저주


쥐는 단순한 골칫거리를 넘어, 인류 최대의 재앙을 가져온 적도 있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 그것이다. 원래는 몽골 초원에서 시작된 이 병은 무역로를 따라 중국과 유럽으로 번졌다. 당시 사람들은 고양이가 흑사병의 숙주이자 마녀의 하수인이라고 여겼고, 결국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최근 들어 고양이가 전염병에 걸린 쥐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드물게 인간에게까지 병을 옮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어떤 학자는 사람에게 기생하는 벼룩이 매개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돌아보면, 인류에게 대재앙을 안긴 존재는 결국 쥐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실제 그 결과는 참혹했다. 고양이가 사라진 도시에는 쥐가 들끓었고, 쥐의 벼룩을 통해 흑사병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1348년부터 1352년까지 단 5년 만에 유럽 인구 절반이 사라졌다. 고양이라는 도시의 작은 파수꾼을 없앰으로써, 인간 스스로 마녀의 저주를 문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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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고양이 부적


우리 역사에서도 고양이는 역병과 깊이 얽혀 있다. 1821년 조선에 콜레라(괴질)가 돌았을 때, 사람들은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여 병마를 막으려 했다.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의 『조선기행』에도 “쥐통(쥐에게 물린 것처럼 아픈 병)”을 쫓기 위한 고양이 부적이 기록돼 있다. 고양이 부적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쥐와 병을 함께 떠올리던 당시 사람들의 집단 기억이었다.


# 대항해 시대와 함재묘


고양이는 단지 민속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인류의 바다 항해에도 숨은 동반자였다. 대항해 시대, 먼 바다를 건너는 배에 쥐가 따라붙는 것은 숙명 같은 일이었다. 쥐는 식량을 축내고, 나무 선체를 갉으며, 전염병까지 퍼뜨렸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건 고양이였다. 배에 오른 함재묘(艦在猫)는 본능대로 쥐를 사냥하며 항해의 안전을 지켰다. 말과 낙타가 육지 문명의 발달을 이끌었다면, 고양이는 바다 건너 교역을 가능케 한 숨은 조력자였다. 인류의 자유로운 이동은 고양이의 발톱과 이빨 덕분에 가능했다.


# 에필로그,.. 고무통에 담긴 6천 년의 계약


고대 이집트만큼 고양이를 아꼈던 문명은 드물다. 이미 6천 년 전, 나일강 주변 사람들은 야생 고양이를 길들여 곡식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삼았다. 기원전 3700년경 무덤에서 발견된 고양이 뼈에는 치료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그 시절부터 고양이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돌봄 속에 함께 살아온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나일강 유역은 비옥했지만, 풍요만큼이나 위협도 많았다. 쥐와 해충은 농작물을 위협했고, 독을 품은 뱀과 전갈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고양이는 두 얼굴을 지닌 동반자였다. 사냥에서는 거침없이 용맹했지만, 집 안에서는 다정한 동료로 곁을 지킨 것이다.


인간이 곡식창고를 내어주고 고양이를 집으로 맞아들인 순간부터, 고양이는 더 이상 단순한 사냥꾼이 아니었다. 농부에게는 곡식을 지키는 수호자였고, 가족에게는 평생 곁을 지켜주는 식구가 되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곡식창고에서 오늘의 작은 고무통까지. 인류와 고양이가 맺은 오래된 계약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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