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이 미덕이 된 순간, 경제는 숨을 멈췄다
사기꾼이 영웅이 되던 시대. 사람들은 땀보다 요행을 좇았고, 신뢰는 무너졌다. 대동강 물의 신화는
그렇게 망국의 거울이 되었다.
“당신도 이 물을 사시겠습니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던 조선 후기, ‘봉이 김선달’은 정직 대신 속임수로 길을 찾으려 했던 시대의 가면이었다. 대동강물을 팔아 돈을 번 사기꾼이지만, 백성들은 그를 부조리한 세상을 조롱한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정직하게 살아서는 부나 신분 상승이 불가능했던 시대, 기만이 곧 지혜로 둔갑했다. 그때부터 속임수는 재능처럼 칭송받았고, 사기는 공기처럼 번져갔다. 이 왜곡된 영웅의 신화는 결국 신뢰를 무너뜨리고 나라의 기강을 좀먹는 망국의 병으로 번졌다.
# 사기, 사회를 좀먹는 성공 신화의 그림자
2017년 불법 금융 다단계와 암호화폐 사기 피해자들을 취재했을 때, 사기범들은 대다수 신뢰를 만들었다.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통해 ‘전문가’로 포장되고, 아카데미(주식·자기계발 강의 등)·출판·유튜브를 이용해 성공 서사를 꾸몄다.
방송사나 언론은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유명 인사, 연예인을 섭외할 때, 회당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출연료를 제의하는 일이 적지 않다. 반면 인지도 낮은 전문가나 비전문가에게는 그런 제의가 거의 없고, 오히려 노출 기회를 얻는 명목으로 출연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출연자나 칼럼에 대한 사전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기꾼들은 그 허점을 노린다. 막대한 출연료를 부담하고 자신들을 미디어 무대 위에 띄운 뒤,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처럼 위장한다. 매체가 부여한 권위를 등에 업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다음, 화려한 삶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명품 가방, 슈퍼카, 강남의 고급 아파트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광고물처럼 드러낸다. 그리고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고수익 사업” 같은 달콤한 제안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때 진짜 무서운 건, 그들을 포장해주는 ‘물주들’이다. 방송과 강연, 출판과 광고 뒤에서 사기꾼의 이미지를 설계하고 자금을 대주는 세력이다.
#불공정한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정직보다 요행을 믿는다.
의외로 이 전략은 잘 먹힌다. 집을 살 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조차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괴감...그리고 가난마저 대물림해줄 수 없는 절박감에 젖어 있는 젊은 세대 등 보통사람들에게, 이들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단번에 인생을 바꾸는 한 방’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구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믿음은 벼랑 끝에서 마지막 주사위를 던지는 도박심리로 변한다.
“까짓 인생, 뭐 있어~”
사기꾼들은 바로 그 절박함과 호승심, 그리고 ‘나는 될 것’ 같은 착각의 틈새를 파고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학력자일수록 그 달콤한 함정에 더 깊이 빠져든다.
이렇게 이들은 수백에서 수천, 때로는 수만의 피해자들을 모아 수백억에서 수천억, 때론 1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다. 판결이 나는 기간은 짧으면 3년, 길면 수십 년이 걸린다. 그 사이 피해자들뿐 아니라 가족, 친지, 주변까지 삶이 무너진다. 사기 피해는 돈만 잃는 게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사기꾼들이 “잃은 돈을 되찾으려면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오라”며 피해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다.
그 순간 피해자는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 그 대상은 가장 믿었던 사람들— 가족, 친구, 지인들이다. 이렇게 1의 피해가 2로, 2의 피해가 3으로 이어지며 신뢰의 고리가 무너지고, 결국 한 사회 전체가 병든다. 불법다단계 사기 구조가 무서운 이유이다.
더군다나 이들이 벌인 짓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 범죄로 걷어들인 수익을 통해 최고의 법무법인을 총동원하며 형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쏟기 때문이다. 피해금액을 돌려받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사회의 정의에 자괴감에 빠지고, ‘속는 놈이 바보다’는 불신에 잠기며, 오히려 사기꾼을 승자로 보기까지 이른다.
“수단이 뭐든 돈만 벌면 된다”는 감각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양심을 지워버린다. 그리고 피해자였던 이들이 새로운 범죄의 씨앗으로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사기 피해자들 중에는 고학력자들이 많다. 절망의 끝에서 “나만 당할 순 없다”는 심리가 싹트고,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이 또 다른 사기를 낳는다. 그렇게 피해는 되풀이되고, 가해와 피해의 경계는 흐려진다.
결국 이 악순환은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고, 국가의 근본을 잠식하는 망국의 전염병으로 번진다.
조선의 몰락도 사기꾼이 롤모델로 추앙받던 시대의 뒤틀린 가치에서 시작됐다.
# 사기꾼이 영웅이 된 순간, 경제가 멈췄다
'민(백성)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승희 박사의 이 저서는 조선 후기의 혼란상을 가장 잘 표현한다. 18세기 후반, 한성에는 지방에서 몰려든 농민과 실직자, 떠돌이 상인들이 넘쳐났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도시로 몰렸고, 거리는 빈민으로 가득했다. 장돌뱅이와 노점상이 늘면서 시장은 북적였지만, 돈의 흐름은 왜곡되었다. 돈이 곧 권력이 되고, 권력이 곧 신분이던 시대였다.
상업이 발달하자 부와 신분을 단숨에 바꿔줄 ‘지름길’이 생겼다. 문서 위조였다. 홍패(科擧 합격증), 관직 교지, 노비 해방문서까지 위조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사대부조차 거짓 문서를 주고받으며 위계를 바꾸었다. 절도·사기·위조가 폭증했다.
이 시기, ‘봉이 김선달’이라는 전설이 태어났다. 그는 조선 말기에 악명 높은 사기꾼으로 전해진다. 뛰어난 두뇌와 재치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이용했으며,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일화를 비롯해 각종 기발한 수법으로 양반과 부자들을 속인 이야기가 유명하다. 봉이 김선달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신뢰가 무너진 조선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설화적 거울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백성은 그를 ‘통쾌한 민중의 영웅’으로 여겼다. 왜일까. 부패한 관료, 부자, 양반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김선달은 제도 바깥에서 그들을 골탕 먹인 자로 희화됐기 때문이다. 그의 기만은 정의의 대리 행위로 포장됐고, 속임수는 통쾌함으로 소비됐다.
학자들은 봉이 김선달 신화가 “조선 후기의 사회 불신과 계층적 절망이 빚어낸 풍자적 상징”이라고 본다. 사기꾼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웅이 되는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다. 그곳에서 정직은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고, 속임수는 재치로 미화된다.
사람들은 ‘누가 더 성실하게 일했는가’보다 ‘누가 더 교묘하게 남을 이용했는가’로 성공을 측정한다. 그 순간, 신뢰는 무너지고 경제는 숨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