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지사지 10화

복(福)은 시련의 불길을 지나야 머문다

크라수스와 호유용, 그리고 진문공이 남긴 교훈

by 서필
苦一樂相磨練 練極而成福者 其福始久
(고일락상마련 련극이성복자 기복시구)
疑一信相參勉 勉極而成知者 其知始眞
(의일신상참면 면극이성지자 기지시진)
— 채근담(菜根譚): 괴로움에 단련된 뒤 얻은 복이 오래간다.


영화 <황산벌>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백제와 신라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던 마지막 순간,

신라의 장수 김유신이 일행을 향해 외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짧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진리다.


살아남는다는 건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수없이 부서지고도 다시 일어서는 끈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결국 복은 그런 사람에게 머문다.

# 세월의 풍파를 이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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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운영하던 서비스 사업이 갑자기 번창하며 단숨에 큰돈을 번 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를 취재하러 강남의 고급 빌라를 찾았을 때, 현관에는 외제차 키 세 개가 반짝였고, 거실엔 새 가구 냄새와 함께 묘한 들뜸이 감돌았다.


인터뷰의 흐름은 전형적인 성공담의 포맷을 따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투자와 노력, 직원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부의 사회적 환원 계획까지. 인터뷰에 실린 문장들은 그의 고백이 아니라, 신문이 만들어낸 성공스토리의 대본일 뿐이었다.


실상은 그의 말과 표정, 그리고 행동에는 허영과 선민의식이 고여 있었다. 모든 것이 팽창한 거품처럼 번들거렸고, 그는 그 안에서 잠시 떠 있는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후 그의 사업체는 폐업했고, 이름조차 이제는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2018년 봄, 반월·시화공단을 찾았을 때 공단은 깊은 불황의 그늘에 잠겨 있었다.

‘임대’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고, 절단음이 간헐적으로 울리는 공장들 사이엔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묵묵히 기계를 돌리는 한 부품업체가 있었다.


그곳의 대표는 30년 넘게 오로지 그 부품 하나만 파온 장인이었다.

“요즘은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버티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게 제 일이지요.”

당시 그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불황의 늪 속에서 버티는 일이 매일이 전쟁 같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그 공장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행을 좇지 않고, 묵묵히 기술 하나로 버텨온 결과였다.

한때 거품 위를 걷던 사업가는 사라졌지만, 쇠와 기름 냄새 속에서 묵묵히 버틴 장인은 남았다. 복은 번개처럼 오는 게 아니라, 쇠처럼 달궈지고 식는 시간을 거쳐야 남는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이런 교훈은 역사의 무대에서도 숱하게 반복된다.


# 겸손을 잃은 복, 칼날이 되다


로마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정계를 쥐락펴락하던 시대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로마 최고의 부자’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였다. 그는 내전으로 몰락한 귀족들의 재산을 헐값에 사들이고, 노예와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돈으로 로마를 움직였지만, 권력의 중심엔 늘 군사적 명성이 있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있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그는 카이사르의 중재로 ‘제1차 삼두정치’에 합류했고, 부와 권력, 명예를 모두 거머쥔 듯했다.


그러나 크라수스는 부로 얻은 권위를 칼로 증명하고자 했다. 파르티아를 얕잡아 본 채 원정을 강행했고, 기원전 53년 카르하이 전투에서 참패했다. 4만 명의 로마 군단이 괴멸했고, 크라수스 자신도 적의 손에 죽었다.

명의 창업 군주 홍무제 주원장 시절, 호유용은 벼락출세의 상징이었다.

서리 출신에서 단숨에 재상 자리에 오른 그는 총명했지만, 그만큼 교만했다.

점차 파벌을 형성하고 전횡의 혐의를 받으면서 황제의 의심을 샀다.


결국 모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홍무제는 그 분노를 잔혹한 방식으로 쏟아냈다. 《명사(明史)》와 사료에 따르면, 호유용의 일족과 연루된 관리 등 3만여 명이 처형됐다. 호유용 자신에게는 산속에 벌거벗긴 채 모기에 물려 죽게 하는 ‘모기형(蚊刑)’이 내려졌다고 전해진다. 다만 오늘날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그가 실제 반역을 도모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본다.


홍무제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세력을 미리 제거한 정치적 숙청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능력과 운으로 얻은 자리가 겸손을 잃으면 칼날이 된다는 사실을, 그의 최후가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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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련을 견딘 자, 복을 얻다


온갖 고난과 멸시를 견디며 스스로를 단련한 끝에 천하를 얻은 이도 있었다.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던 중국 춘추시대, 그 한가운데 ‘오패(五覇)’라 불린 다섯 영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진(晉)나라의 군주, 진문공(晉文公) 중이가 그 주인공이다.


본래 그는 진나라 헌공의 둘째 아들이었지만, 헌공이 총애하던 여희(驪姬)의 간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여희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중이를 제거하려 했고, 그는 결국 타국으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시작된 방랑은 무려 19년에 이르렀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굶주림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어떤 나라에서는 국빈처럼 예우를 받았지만, 대부분은 ‘왕이 될지도 모르는 떠돌이’를 반기지 않았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 구걸까지 해야 했다.


한 번은 배고픔에 지쳐 한 농부에게 음식을 청했더니, 농부는 흙덩이를 내밀며 비웃었다.

분노한 진문공이 채찍을 들려 하자, 곁에 있던 신하 호언(狐偃)이 그를 만류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리는 징조입니다. 백성이 흙을 준 것은 땅을 바친 뜻이니, 지금의 고난을 견디면 머지않아 이 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문공은 마음을 다잡고 흙을 마차에 싣고 길을 떠났다.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서쪽의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지원을 받아 귀국했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권좌에 오른 뒤에도 그는 사치보다 검소함을 택했다.


농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을 진흥시켜 백성을 살렸으며, 스스로 절약을 몸소 보였다. 그리고 기원전 632년, 성복(城濮) 전투에서 강국 초나라를 물리치며 춘추시대의 두 번째 패자(覇者)가 되었다.


기자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오래도록 성공적이고 평온한 삶을 누리는 사람은 늘 비슷했다. 그들은 괴로운 시간을 피하지 않았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단련했고, 그 단단함이 복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복은 물과 같다. 뿌리가 단단하지 않으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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