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전도
세상살이 하다가 만나지는 사연이
글이 되는 것.
하루를 살아내는 이유가
글이 되어버리는
거꾸로 흐르는 시간들
가만히 잘 있는 풀숲을
부러 헤쳐 들여다보고
달빛 환한 밤에
부러 나가 허댄다.
이 밤에 어디 나가노?
절박한 딸의 마음을
엄마는 아실런지.
책에서 만난 환해지는 한 문장이
글로 피어나는 것.
먼지쌓인 책들에
뒤늦은 밑줄을 친다.
성형미인, 들키듯
쥐어짜내 쓴 글엔
향기가 없다.
들깨 짜낸 들기름은
고소하기라도 하지.
가을에 피어난 벚꽃이
사진이 되고,
꽃에서 피어난 상념이
울림으로 태어나는 것.
사채빚에 쫓기듯 조급한 나는
불어나는 이자 갚듯
글부터 쓴다.
다른 이의 풍경을
허기진 듯 뒤진다.
그러니 내 글 속 사진은
온통 외국인.
마음의 평안을 찾자고
글쓰기 시작해놓고
글보다 앞서는 불안이
잉크처럼 번진다.
모든 길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
주객전도의 비포장도로도
내 마음의 흔적인 것을
지금, 이 반성의 찰나에도
그리움 묻어나는 시 한 편 쓰러
슬며시 여행을 가볼까 싶다.
어디로 가볼까
아니,
그보다 먼저-
내 안의 길부터
닦아야할까.
나를 들여다보겠다고, 내 마음 다독여보겠다고 시작한 글쓰기가 나를 옥죄어 옵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글을 쓰는지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글쓰기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슬럼프일까요.
아님 한 걸음 나가기 위한 움츠림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조차도 멈추고 싶은 변명을 만들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