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프대
우리 반 애들을 강제로 징집한다.
각종 전술을 동원한
우리의 작전명 '지구 지키기'
군대도 예외가 있건만
지구수비대에 예외사유는 없다.
금색 보자기를 씌워
슈퍼맨으로 만들어 놓고
너희는 지구수비대라 칭한다.
나이가 드니 온기가 절실한 나.
전기장판 없는 겨울,
물 없는 여름은 상상도 싫다
폭염 속에 고독사 뉴스,
거기에 내가 나올까 무서워
내 이유는 일만이천봉.
나는 오만가지 내 이유로
애들을 강제 징집한다.
'우리는'하고 외치면
'지구수비대'라고 외쳐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 놓는다.
목소리가 작으면 NG를 외친다.
그러던 어느 날.
종이컵에 커피를 맛있게 먹던 어느 날.
"우리 보고는 하지 말라면서
선생님은 왜 종이컵 써요!"
한 아이의 빡친 외침.
아이쿠야.
애들 앞에선
물도 못 마시겠어.
이기적인 지구수비대 대장은
슬그머니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종이컵 속 커피는 식어만 간다
가을이 실종된 지금, 살랑살랑 가을에 입으려고 사두었던 가을 옷들은 한 번도 가을을 만나지 못하고 말았지요. 지구가 아파서 그런 거예요. 봄을 좋아하는 저인데, 이젠 봄도 실종될 것 같아요.
너희들은 이 지구의 미래다! 입학하면 다음날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강제징집 대상이 됩니다. 군복은 금색 보자기. 여덟 살 우리 반 아이들은 분리배출도 척척입니다.
누구 하나 툴툴거릴 수가 없어요. 제가 눈을 휘둥그렇게 크게 뜨고, 지구가 아프면 넌 어디서 살 거야? 묻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은 지구수비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