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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친구하지 않을래요

그래도 가끔은....

by 봄비

개구리 소리 들리는 저녁 산책길,

그 낭만을 모르는 사람과

친구하지 않을래요.

초록벼들이 일렁이는 바람부는 논길.

그 길을 팔벌려 걸어보지 않은 사람과

친구하지 않을래요.


비를 가득 머금은 회색빛 낮은 하늘,

그 포근함 모르는 사람과

함께 걷지 않을래요.


낮아진 하늘 아래 세상이 동화처럼 포근한데

곧 후두둑 비가 떨어지며

내 마음을 적셔줄텐데,

그걸 모르는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테니까요.


바닷물이 꿉꿉하다며

몸 담글줄 모르는 사람,

그 출렁이는 물결이 몸을 감싸는 기분!

그 기분 모르는 당신은

나를 감싸주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비의 낭만도 모르는 사람,

완전 자격 미달이에요.

비오는 날이면 세포마다 살아나

꽃이라도 꽂고 돌아다니고 싶은 나랑

어떻게 친구를 하겠어요.


길 막힌다고, 꽃구경 가자는 저를 말리는 사람,

차창 밖에 정다운 풍경들이 있는데

낯선 오솔길 끝 빨간 지붕집의 일상을,

꼬부라진 할머니의 소녀시절을,

길에서 만난 세상을 상상하는 일.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가 많은데

길이 막힌다고요.


목련꽃 지는 모습이 추레해서 싫다는 사람과

친구하지 않을래요.

하이얀 한복 곱게 입은 듯 꽃 필때는 좋다면서.

누구나 한창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늙어가는 나의 모습도 사랑해주지 않겠지요.

당신은 만년 청춘일 줄 아시나봐요.


너무나 많아요,

친구하지 않을 이유가.

그래서 저는 친구가 없나봐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 많은 개망초도,

나를 위해 콘서트를 여는 숲속 풀벌레도,

소나기, 여우비, 이슬비, 보슬비,

그 모든 빗방울도

내 평생의 친구니까요.


비밀인데요,

그럼에도 가끔은

비가 온다고 전화할

사람 친구 있었으면....

싶기도 해요.


낮아진 회색 하늘, 이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친구하지 않을래요





독특한 취향일까요. 친구가 많지 않은 제 인생,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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