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무아무아: 찰나의 옷깃, 영겁의 질문

by 김대군

일기일회(一期一会)


만남과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로 ‘일기일회(一期一会)’라는 말이 있다.


‘일기(一期)’는 한 사람의 ‘한평생’을, ‘일회(一会)’는 단 ‘한 번의 만남’을 의미한다.


16세기 일본 다도(茶道)를 집대성한 센노 리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센노 리큐의 정원의 나팔꽃이 천하일품이라는 말을 듣고, 아침 꽃을 보기 위해 아침 다회(茶會)를 청했다.


하지만 다회 당일, 리큐의 정원은 텅 비어 있었다. 모든 나팔꽃이 사라진 것에 히데요시는 크게 실망하고 불쾌해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다실(茶室)에 들어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둡고 고요한 다실의 장식장(도코노마, 床の間)에 고요히 꽂혀 있는 단 한 송이의 완벽한 나팔꽃이었다.


리큐는 수많은 꽃을 희생시켜 오직 한 송이로 나팔꽃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것이었다.


그 깊은 뜻을 깨달은 히데요시는 텅 빈 정원에서 느꼈던 실망감보다 훨씬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다회(茶會)에 참석한 주인과 손님이 ‘지금 이 순간의 만남은 생애 다시없을


한 번의 소중한 기회’라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극진한 정성과 존중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비록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 해도, 오늘의 시간과 공간, 분위기는 두 번 다시 재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책 『일기일회』(2009년 5월, 문학의 숲)와 여러 책에서 만남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에 단 한 번의 인연이라고 강조한다.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면 그 자리는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만남은 서로의 가슴에 불을 댕겨주고, 그 사람과 만남으로써 내면이 좀 더 풍요로워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이번 보름달이 가면 다음 보름달은 날이 궂어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다”라며


현재의 순간을 얼마나 무심하게 낭비하고 있는지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더라도,


그것이 생애 마지막인 것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존재와 진실로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지의 방문객


2017년 10월 19일, 우리 태양계에 아주 특별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하와이에 있는 판-스타스 망원경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체 하나를 포착한 것이다.


이 천체는 초속 26km가 넘는 아주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스쳐 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흔한 소행성이나 혜성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이 천체가 태양의 중력에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확인한 '성간 천체(Interstellar Object)'였다.


즉, 머나먼 다른 별 근처에서 우리 태양계까지 날아온 진정한 우주의 손님이었다.


이 첫 번째 성간 방문객에게는 하와이어로 ‘먼 곳에서 온 첫 번째 메신저’ 또는 '정찰병'이라는 뜻의 ‘오무아무아(ʻOumuamua)’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이 특별한 손님을 위해 'I'라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만들고,


이 천체에게 '1I/2017 U1'이라는 공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1I'는 인류가 발견한 '첫 번째 성간 천체'라는 뜻이다.

Artist%27s_impression_of_%CA%BBOumuamua.jpg 관측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정한 오무아무아의 상상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c/Artist%27s_impression_of_%CA%BBOumuamua.jpg 출처 위키백과


다른 별에서 온 나그네의 초상


먼저, 모양이 아주 독특했다.


약 7~8시간을 주기로 오무아무아의 밝기가 무려 10배 넘게 차이가 났다.


이는 천체가 회전하면서 우리에게 보이는 면적이 극단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길이 약 400m에, 길이와 폭의 비율이 최대 10:1에 이르는 길쭉한 '시가(cigar)' 모양이거나,


혹은 아주 얇고 평평한 '팬케이크(pancake)' 모양일 것으로 추정했다.


어느 쪽이든, 태양계에서는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아주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형태였다.


표면의 색깔은 검붉은 빛을 띠었다.


이것은 천체의 표면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우주의 강력한 방사선을 맞으며 '우주 풍화'를 겪었다는 의미다.


수억 년 이상 기나긴 세월을 성간 공간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떠돌아온 '오래된 여행자'라는 뜻이다.


회전하는 방식 또한 이상했다. 대부분의 천체는 팽이처럼 하나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돈다.


하지만 오무아무아는 마치 공중에서 비틀거리는 막대기처럼


여러 축으로 아주 복잡하게 넘실거리며 회전하는 '텀블링(tumbling)' 상태였다.


게다가 혜성의 가장 큰 특징인 '코마(coma)'가 전혀 없었다.


혜성은 태양에 가까워지면 표면의 얼음이 녹아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긴 꼬리를 만드는데,


오무아무아에겐 이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2017년 9월 9일, 태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속도는 무려 초속 87.7km까지 치솟았다.


이후 태양 중력의 영향을 받아 방향을 확 꺾은 뒤,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계 뒤쪽으로 영원히 떠나고 있다.


미지의 혜성인가, 외계의 돛인가?


인류가 오무아무아를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 손님은 이미 우리 태양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전 세계 천문학계는 즉각 지상과 우주의 거의 모든 망원경을 동원하여 약 11일간 오무아무아를 집중 관측했다(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총 80일).


이후, 과학자들은 오무아무아가 남긴 데이터 중 '비중력 가속' 현상과 관련해서 거대한 논쟁을 벌였다.


주류 과학계는 오무아무아를 우리가 아직까지 몰랐던 새로운 유형의 혜성이나 소행성일 것으로 본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소나 질소 같은 가스를 내뿜으며 가속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하버드 대학교 천문학과의 석좌 교수인 아비 로브(Avi Loeb)는 오무아무아는 자연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무아무아의 비중력 가속이 태양 빛의 압력을 이용한 '라이트 세일(Light Sail)'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는 외계 지적 생명체가 만든 인공물, 예를 들어 고장 난 탐사선이나 '우주의 돛'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로브 교수는 "특별한 증거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오무아무아의 수많은 이상 현상들을 각각 다른 어려운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것보다,


'인공물'이라는 단 하나의 가설이 모든 것을 더 간결하게 설명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주 방문객들과 천연 방공망


오무아무아는 특별한 손님이었지만, 사실 우리 지구는 매일 수많은 '방문객'들이 스쳐 지나간다.


NASA를 비롯한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24시간 하늘을 감시하며 '지구 근접 천체(NEO)'를 추적한다.


매년 2,000개에서 3,000개의 새로운 소행성이 지구 근처를 찾아오는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그저 지구 궤도 근처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매년 100여 개는 달보다도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다.


이 중 특별히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위협 소행성(PHA)' 약 2,350여 개는 집중 감시 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


사실 이러한 방문은 지구만의 일은 아니다.


대기가 없는 달과 화성의 표면은 수십억 년간 이어진 방문객들의 흔적, 즉 크고 작은 충돌구로 가득하다.


특히 태양계의 거인 목성은 강력한 중력으로 지구로 향하던 위험한 손님들을 대신 끌어안으며


지구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Hs-2009-23-crop.jpg 2009년 7월 목성에서 일어난 충돌 사건으로, 충돌한 소행성은 지름 200 ~ 500 m로 추정되고 있다. 충돌 흔적은 태평앙 면적과 비슷하다. 출처 위키백과


특히나, 다행히도 지구에는 두께 100km에 달하는 강력한 '천연 방공망', 바로 대기권이 있다.


매일 100톤이 넘는 우주 먼지와 모래알들은 이 방공망에 부딪혀 한 줄기 '별똥별'이 되어 사라진다.


웬만한 자동차 크기의 소행성까지는 대부분 이 방공망이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폭발한 약 20m 크기의 소행성은


지상에 직접 충돌하지 않았음에도 그 충격파만으로 큰 피해를 남겼다.


1908년 시베리아를 초토화시킨 퉁구스카 대폭발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50m급 소행성 정도가 되면,


대기권의 완전한 방어는 어려워지며 지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행히도, 인류 문명을 위협할 만한 km 단위의 거대 소행성이 지구에 추락할 확률은 수백만 년에 한 번꼴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생에서는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작은 위협은 대기권이 막아주고,


큰 위협은 우주의 광활함과 시간이라는 또 다른 방패가 막아주는 기적적인 균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찰나의 옷깃, 영겁의 질문


오무아무아라는 한 나그네가 우리 태양계 앞마당에 슬며시 들어왔다가,


찬물 한 대접 마시지 않고 그저 마당을 가로질러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바로, 일기일회다.


인류는 이 손님을 마주하자마자 전 세계 망원경을 총 동원하여 영접했다.


그가 떠난 뒤에도 열띤 토론을 하는 등 그 만남에 집중하였다.


오무아무아의 관측 데이터를 퍼즐 조각처럼 모았다.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우주의 문법'을 적용하여, 이동 경로를 컴퓨터로 그려냈다.


그 결과, 인류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2017년 9월 9일에 오무아무아가 태양에 가장 가까웠으며, 그때의 속도가 초속 87.7km였다는 사실까지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결국 인류의 '영접'은, 현재의 단서를 통해 보지 못한 과거까지도 온전히 이해하려는 치열한 지적 탐구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무아무아는 우리에게 답을 주러 온 친절한 스승이 아니라,


묵직한 화두(話頭) 하나를 던지고 홀연히 사라진 선승(禪僧)과 같았다.


이것은 무엇인가? (是甚麽)"라는 근원적 질문처럼, 오무아무아는 온몸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으로 보이는가? 너희가 아는 자연법칙의 예외인가, 아니면 너희가 모르는 존재의 증거인가?


너희는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진정 혼자인가, 아닌가?"


이 인연은 지독히도 일방적이다. 우리는 그를 향해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정체를 두고 밤샘 토론을 벌이며 책을 쓴다.


그런데, 정작 오무아무아는 아무런 응답도, 관심도 없이 태양 반대 방향으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에 비친 과 같다.


길을 가던 나그네는 옹달샘에 고요히 잠긴 달을 보고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며, 멀리 있는 고향을 생각한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을 뿐이다. 나그네의 감상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달을 본 나그네는 이전의 나그네가 아니다. 오무아무아를 본 인류는 이전의 인류가 아니다.


그 일방적인 만남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우리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오무아무아의 옷깃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스침이 남긴 바람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우리 문명(文明) 위에 불고 있다.

keyword
화, 금 연재
이전 04화블랙홀과 이섭대천(利涉大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