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야경

by 반디

가을 초입, 여름철 장마 같은 비가 개이고 청명하게 가라앉은 도시 야경을 바라본다.

앞산 능선만 겨우 드러날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 불빛들이 현란하다. 쳐들어 올 적(敵)도 없는데 겹겹으로 둘러 쳐진 것이 천상 진격의 거인에서나 봄직한 높고 견고한 성벽 같다. 그 사이로 정갈하게 난 여러 갈래의 교차로까지, 한 치 어긋남 없는 레고시티 블록이 실사화된 느낌이다. 도로 위에는 정지된 가로등 불빛과 형형색색의 신호등 불빛, 불안한 듯 점멸하는 불빛, 산발적으로 켜져 있는 아파트 불빛까지 운율에 맞춘 듯 빛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바로 앞 아파트 상가 건물에 위치한 태권도장과 에어로빅 학원에서는 최신 유행 가요의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구령과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최근에는 '데이식스'와 '케이팝데몬헌터스'가 메들리처럼 쿵작거린다. 가깝게는 옆집의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이웃과 길에서 나누는 담소,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굉음 등도 증폭되어 아파트 벽을 타고 올라온다. 가끔씩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는 매일같이 듣는 일상 소음을 깨는 새로움을 주기도 한다.

소음에 다소 민감한 나로서는 이 모든 도시 소음들이 썩 달갑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벗어날 수 없으니 즐기는 수밖에 없다.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가을이 되니 귀뚜라미 소리가 주변 소음들의 존재감을 잊을 정도로 시골집에 와 있는 정겨움과 편안함을 준다.

어느 집에선가 고등어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 온다. 비릿한 생선 냄새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웃들도 있지만 요즘은 왠지 싫지 않다. 이미 저녁 식사를 끝냈지만 절로 입맛을 돌게 한다. 어느 날은 청국장, 김치찌개, 카레 냄새 등으로 이웃집의 저녁 메뉴를 자연스레 염탐하게 되기도 한다. 새벽에 끓여 먹는 라면 냄새는 더 말해 무엇하랴. 주말이면 인근 재래 야시장에서 풍겨오는 삼겹살 굽는 냄새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주민들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 없던 술약속도 잡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오래전에 봤던 강풀의 영화 '아파트'에서는 도시 주택을 대표하는 아파트의 삭막하고 단절된 모습들을, '도시 괴담' 드라마에서는 치열한 경쟁과 비인간적인 도시인들의 삶을 공포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그만큼 도시는 어딘가 마음이 불편한 곳이다. 끊임없는 상대적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번잡하고 복잡하며 온갖 공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도시 야경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활력이 느껴진다. 모두 다른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와 닮은 모습들을 보게 된다. 불 켜진 창마다 삶이 살아 있다. 어둠도 잠재우지 못하는 도심 속 사람들의 열정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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