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정원이나 텃밭을 일궈 본 사람들은 안다. 잡초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쓰나미급 녀석이 '세 잎 클로버'라는 것을. 모양새는 앙증맞고 동글동글하니 감성 있게 생겼으나 하는 짓은 얄밉기만 하다. 미리 뽑힐 것을 아는지 깊지 않은 뿌리로 조금의 틈만 있어도 파고들어 인근을 순식간에 쓸어 버린다. 잡초보다 더한 생명력에 혀를 내 두를 지경이다. 무한 클로버 지옥이 따로 없다.
넉살 좋게 환경을 따로 가리지도 않아 몇 달 전 아파트 화단으로 식물을 옮기면서 딸려 온 녀석이 어느새 안방 주인인양 기세 등등 하게 뻗어 나가고 있다. 화단의 흙이라고 해봐야 자연 흙처럼 영양가 있고 탄력진 것도 아닌 모레 흙인데도 개의치 않는다. 객식구가 주인행세하는 꼴이 보기 싫어 물을 주면서 보이는 족족 뽑아내도 한번 자리를 튼 녀석은 전혀 자리를 내 줄 의사가 없어 보인다. 네 잎 클로버라면 소중한 지인들에게 선심 쓰듯 마구 퍼 주기라도 할 텐데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
이렇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녀석 입장에서는 세 개와 네 개, 한 잎 차이로 제거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귀한 대접을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하니 억울할 것이다. 기형으로 태어났으나 사람들이 부여한 '행운'의 상징이 된 네 잎 클로버. 경제논리로 들이댄다면 희소가치가 있기에 더욱 귀한 존재가 된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세를 너무 키우다 보니 세 잎 클로버 스스로 가치를 떨어 뜨린 셈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뿌리내리는 그 생명력 하나만큼은 존재가치가 무엇이 되었든 찬사를 보내고 싶다.
문득 클로버가 꼭 우리네 삶과 희한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로 뿌리째 뜯기고 짓밟히고 베어져도 살아나는, 살아내는 우리네 삶. 80억 생명의 무게는 모두 같을진대 존재 가치가 없다고 내쳐지고, 제거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생명의 존재 가치는 도대체 누가 매기는 것인가? 사람은 기형으로 태어나 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철학적인 사람도 아닌데 꼬꼬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커져간다.
자꾸 무거워지려는 생각과 글을 이쯤에서 접어야겠다. 세 잎 클로버, 존재감 없어 보이는 식물 하나가 주는 울림이 크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분다. 조금은 마음을 더 여유롭게 갖고 이번에는 화단에 자리 잡은 세 잎 클로버가 화단을 덮을 때까지 그저 묵묵히 지켜보려 한다. 네 잎 클로버가 아니라 세 잎 클로버라는 이유만으로 뿌리째 뽑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