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비례해서 감성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낀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거의 경험해서 더 이상 크게 기쁘거나 슬프거나 놀랄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던 것 같다.
어미새는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둥지를 떠나 독립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끼 사랑이 유별나기로는 인간만 한 존재가 있을까 싶지만 언젠가는 자녀가 독립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응원해줘야 한다. 그것 역시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오늘, 외지로 아들을 떠나보내려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감정들이 밀려온다. '품 안의 자식'이라고 그동안 마냥 어린아이처럼 대했던 녀석이 어느새 훌쩍 자라 둥지를 떠났다. 영영 둥지를 떠난 것은 아니겠지만 비어 있는 빈자리가 공허하기만 하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메말라있던 눈물이 자꾸 북받쳐 올라온다. 염려와 걱정이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구친다. 잘해준 것은 기억나지 않고 못해준 것만 기억나서 더욱 마음이 아리다.
어제저녁, 눈물을 애써 눌러 참던 녀석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기어이 눈물을 쏟았다. 평소 좋아하던 미역국을 그릇에 담느라 뒤돌아서 있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감기에 콧물을 훌쩍이나 싶었더니 훌쩍임이 끊이지 않았다. 심상치가 않아 국을 푸다 말고 뒤돌아보니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마음이 이런데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는 녀석의 마음은 어떨까 싶어 나 역시도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었다. 녀석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말없이 안아주었다. 말보다 지금은 따뜻한 엄마의 체온을 전달하고 싶었다.
"엄마가 울까 봐 안 울려고 했는데... 그동안 속만 썩인 것 같아서 미안해..."
떨리는 말만큼이나 녀석의 감정이 복잡하게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녀석에게 전염이 되었는지 내 목소리도 자꾸만 자꾸만 떨렸다.
"네 곁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렴. 어디에 있든 항상 건강하고 안전하기만 하면 된다..."
그날 저녁 메뉴는 원치 않게 눈물젖은 미역국이 되고 말았다.
녀석이 사춘기를 유독 심하게 겪어 한때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쏟아 내기도 하고, 각자 다른 행성의 외계인을 상대하듯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때로는 답답해하기도, 때로는 책망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을 녀석도, 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겨워했다.
녀석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둥지 밖으로 떨어질까 늘 염려하고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둥지 끝에 매달려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비상을 준비한다는 것을 모른 채 그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던 것 같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들을 왜 그때는 보지 못했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때로는 자식이 나보다 더 어른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자식의 선택이 더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줄도 알아야 한다. 부모의 생각과 선택만이 정답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구운 마늘이 올려진 살치살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거스까지 세팅된 한 접시 식사.
유튜브를 뒤져가며 추석때 받은 용돈으로 녀석이 떠나기 전, 가족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친정 어머니께도 해 드리지 못했던 식사 대접을 녀석에게 받으니 감동과 함께 정말 부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녀석이 드디어 이소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녀석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휑한 빈 둥지에서 기다릴 것이다. 녀석이 언젠가 지쳐 돌아오면 언제든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도록. 차갑고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힐때면 언제든 쉬었다 갈 수 있도록. 그래서 더 힘차게 날아 오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