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이에게
진아, 요즘 들어 네 생각이 자주 난다.
무던히도 영화를 좋아해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너,
자정이 넘도록 영화의 엔딩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던 나.
이런 너와 나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극장 상영 영화도 모자라 매주 소극장을 찾아다니며 제3세계 영화나 독립 영화를 보며 황홀해하던 너와 나.
칠흑 같던 어둠 속에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 어둠 속에서 울고 웃던 너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영화가 끝나고 사위가 밝아졌을 때,
보조개가 살짝 들어간, 불그스름한 너의 웃음기 있는 얼굴은 청초하다 못해 맑은 이슬 같았다.
돈이 없던 시절, 영화 팸플릿이라도 손에 쥐면 보물을 얻은 것처럼 좋아하던 너,
국제영화제가 열리면 무조건 감독과의 대화가 있는 영화부터 빡빡하게 예매하던 너,
엄마와 크게 다투던 날, 몇 년을 모아 왔던 수 권의 영화 팸플릿 클리어 파일이 버려져 무척이나 속상해하던 너.
지금은 화려한 쇼핑몰과 풍미 가득한 식당으로 가득 채워진 이 거리가
너와 두 손잡고 쏘다니던 영화관 골목길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굽이굽이마다 너의 향수가 어려 있다.
어른이 되는 게 쉽지 않았던 너와 나.
폭풍우 치는 밤과도 같았던 너,
안개를 쫓아 휘청이던 나.
폭풍우와 안개가 만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너와 나.
그 속에서 너와 맞잡았던 손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손만큼이나 너의 소식도 희미해져 갔다.
진아, 너와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게 몇 년 전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휴대폰에서 너의 연락처를 찾았지만
너무 오래도록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에 차마 누르지 못하고
네 이름 석자만 쌓인 그리움으로 쳐다본다.
너도 나처럼 까맣게 염색한 머리 위로 실마디 같은 흰머리가 설핏 보이는지,
여전히 영화를 보며 웃음 짓고 있는지,
국제영화제가 열릴 때면 늦은 저녁까지 객석에 앉아 감독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아, 가끔씩 생각했다.
네가 가진 재능만큼이나 굴곡진 삶을 살았던 너의 삶이 한 편의 영화라고.
네 삶을 영화로 만들면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거라고.
네가 비록 감독이 되지는 못했지만 너는 누구보다 멋진 인생의 감독이었다고.
영화만큼이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해 신문에도 실렸던 너를 기억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너지만 이미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 것도 같다.
때를 기약할 수는 없지만 다시 너와 만나는 날,
언젠가 만났을 때처럼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편안할 거라는 걸 안다.
진아, 무심한 나를 이해해 달라는 싱거운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너를 아직도 그리워하고 사랑한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