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복사기와 우리의 소소한 연대

by 생각의정원

오늘 아침, 사무실 복사기가 또 고장 났다. 정확히는 고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저 약간 비뚤어진 상태였다. A4 용지를 넣으면 살짝 기울어져서 나오는 그런 문제였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사람이 기울어진 채로 복사된 문서를 받아들고는, 마치 그것이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작은 불완전함에 적응해 버린다. 복사기가 비뚤어진 문서를 토해내는 것처럼, 우리 삶도 조금씩 기울어져 있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점심시간, 나는 혼자 복사기 앞에 서서 그 기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용지 가이드가 살짝 틀어져 있었다.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주기만 하면 될 일이었는데,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복사기를 고치고 나서 첫 번째 테스트 복사를 했을 때, 완벽하게 반듯한 문서가 나왔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성취감을 느꼈다. 마치 세상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후에 김 과장이 복사를 하러 왔다가, 반듯하게 나온 문서를 보고는 잠깐 멈칫했다.

"복사기 고쳤네요?" 하고 그가 물었다.

"네, 간단한 문제였어요."

김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왠지 고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봐서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약간의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생각해보니 직장이라는 곳은 참 이상한 공간이다. 모든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 그런 곳.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외면하며 각자의 업무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 작은 용기를 내어 복사기의 용지 가이드를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퇴근길, 나는 다시 복사기 앞을 지나갔다. 여전히 완벽하게 반듯한 문서들이 나오고 있었고, 복사를 하는 후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때로 이렇게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고.


집에 도착해서 이 하루를 되돌아보니, 복사기 한 대를 고친 것뿐인데 마치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작은 불완전함들을 조금씩 고쳐나간다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일도 아마 비슷한 작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때로는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손길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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