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아"라는 말만큼 이상한 말도 없다.
정말 괜찮을 때는 굳이 하지 않는 말이니까.
내가 처음 이 말을 진짜로 이해한 건 스물다섯 살 때였다.
그때 나는 모든 게 엉망이었다. 취업은 안 되고, 연인과는 헤어졌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형적인 망한 인생의 표본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깨어나면서 문득 생각했다. "아, 다 괜찮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백수였고, 여전히 혼자였고, 여전히 가난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괜찮았다. 마치 어떤 스위치가 딸깍 하고 켜진 것처럼.
그때 깨달았다. "괜찮다"는 건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걸.
친구들은 내게 자꾸 물었다. "정말 괜찮아?" 나는 대답했다. "괜찮아." 그들은 의심스러워했다. 이렇게 망가진 상황에서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맞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괜찮지 않았다. 하지만 주관적으로는 괜찮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이 현상을 연구해보기로 했다.
언제 사람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정말로 괜찮을 때와 그냥 그렇게 말하는 때의 차이는 무엇인지.
관찰 결과,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상황에서 이 말을 한다.
첫 번째는 거짓말할 때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무너져 있을 때. 이때의 "괜찮아"는 일종의 방어막이다.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는 신호.
두 번째는 포기할 때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냥 괜찮다고 하는 때. 이때의 "괜찮아"는 체념에 가깝다.
세 번째가 진짜다. 정말로 괜찮을 때. 이때의 "괜찮아"는 평온에서 나온다.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처음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포기였을 수도 있고, 진짜였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진짜 괜찮을 때는 굳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괜찮다. 설명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이.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가 "다 괜찮아"라고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정말로 괜찮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마치 주문처럼.
취업이 되어서 괜찮아진 게 아니었다. 새로운 연인이 생겨서 괜찮아진 것도 아니었다. 돈이 생겨서 괜찮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괜찮아졌다.
아마도 "괜찮다"는 마음가짐 자체가 삶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괜찮다고 생각하면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좋은 선택이 쌓이면 삶이 실제로 나아진다.
물론 모든 게 항상 괜찮은 건 아니다. 괜찮지 않은 날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것도 괜찮아." 그러면 정말 괜찮아진다.
얼마 전 후배가 찾아왔다.
연애 문제로 고민이 많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는 들어주다가 말했다. "다 괜찮을 거야."
후배가 물었다. "정말요?"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괜찮을 거야."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후배는 뭔가 이해한 표정이었다.
"괜찮다"는 건 확신이 아니라 태도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수용이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이런 낙서를 본다. "Everything will be okay."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누군가 자신에게, 혹은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 낙서 밑에 조그맣게 써 넣고 싶어진다. "Everything is already okay." 모든 게 이미 괜찮다고.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신비로운 능력 중 하나인 것 같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경험적으로는 가능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괜찮지 않아"라고 울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다 괜찮아."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정말 괜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괜찮지 않은 것도 삶의 일부이고, 삶은 본질적으로 괜찮은 것이니까.
좋든 나쁘든, 힘들든 쉽든,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게 내가 스물다섯에 배운 진리다. 다 괜찮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