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시간여행자가 된다.
그것도 아주 서툰 시간여행자. 언제 어디로 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어느 날도 그랬다. 공원을 걸으면서 발밑의 은행잎을 밟는 순간, 갑자기 일곱 살의 내가 나타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오래된 라디오에서 갑자기 선명한 주파수가 잡히듯이.
일곱 살의 나는 나뭇잎을 수집가였다. 정확히 말하면 '완벽한 나뭇잎' 수집가였다. 구멍이 나지 않고, 찢어지지 않고, 색깔이 고르게 변한 나뭇잎만을 골라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두었다. 그때는 그것이 영원히 보존될 거라고 믿었다.
웃기는 건 그 '완벽한 나뭇잎들'이 결국 모두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완벽함을 추구했지만 시간 앞에서는 아무것도 완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일곱 살에 배운 첫 번째 철학 수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땐 그것이 철학인 줄 몰랐을 뿐.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금의 나는 그 반대다. 나는 이제 구멍 난 나뭇잎, 반쯤 썩은 나뭇잎, 이상하게 생긴 나뭇잎들을 더 좋아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더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아마도 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카페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단풍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나뭇잎들도 각자 이야기가 있을 텐데, 우리는 그냥 '낙엽'이라고 부르며 치워버리는구나.
그래서 나는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저기 떨어지는 노란 나뭇잎은 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빗방울을 맞았을까? 저 빨간 나뭇잎은 얼마나 많은 새들의 발톱을 견뎌냈을까? 그리고 저 갈색으로 변한 나뭇잎은 언제부터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나뭇잎이 죽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정확한 표현인지 의심스럽다. 죽는 게 아니라 변신하는 게 아닐까? 나뭇잎에서 흙으로, 흙에서 다시 나무로. 형태만 바뀔 뿐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문득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늘 "나뭇잎 소리를 들어봐"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뭇잎이 무슨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뭇잎은 정말 소리를 낸다. 바스락바스락, 사각사각. 그것은 시간의 소리이고, 계절의 소리이고, 변화의 소리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지금의 이야기도, 앞으로 쓰게 될 이야기들도.
가끔 나는 나뭇잎들이 우리보다 더 현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떨어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진다. 싸우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놓아버린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놓아야 할 때를 알면서도 붙잡고 있으려 한다. 변해야 할 때를 알면서도 그대로 있으려 한다. 나뭇잎처럼 살 수는 없을까?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다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어느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뭇잎 한 장을 주워 왔다. 구멍이 여러 개 나고, 한쪽이 찢어진 그 나뭇잎을. 일곱 살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그 나뭇잎을.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책상 위에 놓인 그 나뭇잎을 보면서 생각한다. 완벽함이란 결국 불완전함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흠집과 구멍들까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아름다운 게 되는 건 아닐까?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나뭇잎도 조금 더 바스러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슬픈 일일까? 아니다. 그것은 다음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계속 들린다. 그들은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고. 모든 것은 흘러간다고. 그리고 그것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일도 나뭇잎 소리를 들으러 나갈 생각이다.
어떤 시간여행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