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앞에서

by 생각의정원

세탁소 앞을 지나갈 때면 나는 언제나 잠깐 멈춰 선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얀 셔츠들과 검은 정장들을 바라본다. 그것들은 마네킹에 걸려 있지만, 어쩐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기도 하고,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기도 한다.


옷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존재다. 그것을 입는 사람이 없을 때는 그저 천 조각에 불과하지만, 누군가 입는 순간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아니, 때로는 그 사람을 규정하기도 한다. 정장을 입으면 진중해 보이고, 캐주얼한 옷을 입으면 편안해 보인다. 옷이 사람을 만드는 걸까, 아니면 사람이 옷을 만드는 걸까.


어느 목요일 저녁, 나는 평소보다 일찍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갔다. 사장 할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계셨고, 낡은 라디오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내가 가져온 재킷을 받아들고 영수증을 써주면서 말씀하셨다.


"이 옷, 참 좋은 옷이네요. 오래 입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옷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시는 걸까. 브랜드를 보시는 걸까, 아니면 원단의 질감을 느끼시는 걸까. 아마 그것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 예를 들어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이나 그 옷에 담긴 이야기 같은 것을 읽으시는 것은 아닐까.


세탁소는 어쩌면 도시의 기억창고 같은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옷이 들어오고 나간다. 중요한 면접을 앞둔 사람의 정장, 첫 데이트에 입을 원피스, 아이의 입학식에 입을 한복. 그런 옷들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희망도, 불안도, 설렘도.


그리고 세탁소 사장님들은 그런 이야기들의 증인이 된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읽으려 하지는 않겠지만, 오랜 시간 그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옷이 자주 오는지, 어떤 옷에 어떤 냄새가 배어 있는지, 어떤 자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내 옷들이 세탁소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까, 하고. 서로의 주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자신이 겪은 하루에 대해 수다를 떨까. 아니면 그저 조용히 청소되기를 기다리며 명상에 잠겨 있을까.

이틀 후 옷을 찾으러 갔을 때, 재킷은 새것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비닐 포장지에 싸여 옷걸이에 걸려 있는 모습이 마치 선물 같았다. 할머니는 옷을 건네주며 웃으셨다.


"잘 어울릴 거예요."


집에 돌아와 재킷을 옷장에 걸면서 나는 생각했다. 세탁이라는 것은 단순히 때를 빼는 것이 아니라, 옷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깨끗해진 옷을 입는 우리도 어쩐지 새로운 기분이 된다.


세탁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잠깐씩 멈춰 선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의 옷들을 바라본다.


그것들이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바라면서.

keyword
이전 12화막힌 길에서 찾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