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떠올리면 늘 ‘그냥’이라는 말이 앞선다.
그냥 좋다, 그냥 가고 싶다, 그냥 지내보고 싶다. 설명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설명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그 마음이 옅어지는 것 같아 차라리 멈춘다. 그래서 ‘그냥, 통영’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이곳에 오면 자꾸 발걸음이 느려진다. 도천동 언덕을 오르다 보면, 갑자기 발밑을 스치는 고양이 한 마리에 멈추게 되고, 오래된 약국 간판이나 다 닳아버린 계단 난간에 괜히 시선이 꽂히기도 한다. 특별한 건 없는데, 멈춰서 바라보게 되는 풍경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서울에서는 늘 시간이 나를 앞질러 뛰어가는 느낌인데, 여기선 내가 시간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방금까지 사찰의 목탁 소리가 들리던 길이 바로 작은 시장 골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시장 골목에선 생선 비린내와 튀김 기름 냄새가 뒤섞인다. 한쪽에서는 기도를 드리고, 몇 걸음 뒤에선 흥정이 오가고, 또 몇 걸음 뒤에선 고등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장난을 친다. 제각각인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규칙 같은 건 없어도,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게 그냥 통영의 모습이다.
저녁이 되면 바닷바람에 노을빛이 얹힌다. 해가 기울어가면서 바다는 금빛에서 주홍빛, 다시 잿빛으로 순식간에 바뀐다. 나는 그 짧은 변화를 놓치기 싫어 멍하니 서 있다. 옆에선 낯선 여행객이 사진을 찍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쥔 채 끌려가듯 부모 손을 잡고 간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다.
강구안 육교를 천천히 걷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 가야 할 목적지도 없는데 그냥 걷는다. 슬리퍼, 등산화, 구두, 맨발… 신발의 종류만큼 다양한 사연이 길 위에 흩어져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는 게 좋다. 괜히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다.
어느 게스트하우스 앞 고양이는 사람들을 아예 무시한다. 옆에서 사진을 찍든, 발소리를 내든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 태연함이 부럽다. 고양이는 이곳이 자기 집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그 고양이 덕분에 나도 이 도시에 한 자리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밤이 되면 바닷가의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진다. 그 불빛은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의 하루가 만들어낸 불빛이고, 땀과 시간을 쏟아부은 흔적이니까. 나는 그 불빛들을 보며 내 삶의 작은 불빛을 떠올린다. 아직은 흔들리고 작지만, 언젠가 이 도시의 불빛처럼 누군가를 안심시키는 빛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통영은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는다. 놀이공원도, 쇼핑몰도, 많은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대형빌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자꾸 마음이 풀린다. 억지로 꾸며낸 게 없는 공간, 그저 삶이 이어지는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
돌아오는 길, 늘 뭔가를 빠뜨린 것처럼 아쉽다. 아직 걷지 못한 골목이 있고, 들어가지 못한 카페가 있고, 바라보지 못한 바다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다 보지 않았으니 다시 와야 하고, 다 알지 못했으니 더 알고 싶어진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도시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냥, 통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이름. 꾸미지 않아도 빛나는 순간들,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채워주는 풍경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계속 곱씹는다. 그냥 통영.
이 글은 제가 오래도록 기록해 온 이야기의 한 조각입니다.
그 흔적들을 모아 《통영,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는 책으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며 제가 받은 위로와 영감은 통영이 제게 건네준 선물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통영의 풍경과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