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통영은 분주하다. 시장의 활기가 골목마다 넘치고, 여행객들의 발자국이 바다를 향해 이어진다. 그러나 밤이 오면, 이 도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낮의 소란은 조용히 가라앉고, 바다는 어둠을 품은 채 은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나는 바닷가 언덕에 앉아 천천히 깔리는 어둠을 바라본다. 붉은 조명을 두른 다리는 고요히 숨을 쉬고, 항구의 불빛들은 하나 둘 켜지며 물 위에 작은 길을 만든다. 파도는 낮보다 더 분명하게 귀에 닿고, 그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뿡뿡 배의 울음소리는 통영의 심장처럼 깊게 울린다.
그 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신호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장가다. 항구에 묶인 어선들은 밤새 바다와 씨름하며 살아갈 준비를 하고, 어부들은 새벽의 고단함을 안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의 관객처럼, 이 장면을 묵묵히 바라본다.
바다 위에서 점점으로 빛나는 불빛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떤 불빛은 시장에서 하루 장사를 마친 이의 땀방울이고, 또 다른 불빛은 외로운 예술가가 홀로 건네는 한숨이다. 그것들이 모여 수면 위에서 반짝일 때, 통영의 밤은 거대한 서사시가 된다. 말없이 빛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숨어 있다.
귓가에는 배가 뿡뿡거리는 소리와, 간간히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남는다. 낮 동안 밀려들던 잡념과 번잡함이 바람에 쓸려 나가는 듯하다. 마치 바다가 나의 고단함을 대신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이 도시는 낮보다 밤에 더 다정해진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내고, 고요 속에서 위로를 건넨다.
문화회관의 지붕이 어둠 속에서 강구안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다. 낮에는 예술과 공연의 공간이지만, 밤에는 고된 노동의 소리를 함께 품는다.
감성과 생계가 함께 어울리는 이 통영의 밤은 참 이상하고도 아름답다.
푸른 물감이 번져가는 바다는 여전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달빛과 배의 불빛이 교차하며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내 안의 외로움마저 잔잔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오늘 하루 내가 삼킨 말과 감춘 눈물까지도, 바다는 묻지 않는다. 대신 다 들어주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감싸준다.
강구안 바다 위 커다란 조형물, 통영의 마스코트가 환히 웃고 있는 것도 이 도시의 밤을 덜 무섭게 한다. “통영”이라는 이름을 품은 그 미소는, 낯선 이들에게도 익숙한 온기를 건넨다. 그 안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언젠가 다가올 사랑, 아직 오지 않은 희망이 함께 담겨 있다.
Tonight, TONGYEONG.
이 글은 제가 오래도록 기록해 온 이야기의 한 조각입니다.
그 흔적들을 모아 《통영,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는 책으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며 제가 받은 위로와 영감은 통영이 제게 건네준 선물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혹시 통영의 풍경과 감정을 더 깊이 느끼고 싶으시다면 그 책 속에서 함께 걸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