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생기는 역사』
001. 이순신은 무과 시험에서 12등을 했다.
통산 23전 23승, 판옥선 13척으로 수백 척의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워 이긴 명량대첩을 이끈 장군이자 구렁텅이에 빠진 조선이라는 나라를 구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지략과 무력을 갖추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의외로 무과 시험에서는 전체 12등을 했습니다.
좌측 상단에 보이는 종이는 1576년에 이순신 장군에게 온 무과급제 교지이다. 저 종이에 적혀있는 한자를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敎旨(교지) - 임금(선조)이 내린 명령을 적은 문서이다. 합격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종이가 붉은색이라 하여 홍패라고도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받은 이 홍패는 과거시험의 최종단계인 전시 합격자에게 내린 문서입니다.
保人 李舜臣 (보인 이순신) - 여기서 보인은 현역으로 군대를 간 사람들의 비용과 그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적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전적으로 보인을 정의하면 군포, 군미, 군전 등을 내는 방식으로 군역을 부담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보인을 적은 사유 중에는 조선의 중요한 수취제도 중 하나인 군역을 표현할 때 현역병으로 군대를 가는 정병과 그것을 대체하는 복무를 하는 보인을 구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무과 시험을 볼 당시의 나이는 32살로 적지 않은 나이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武科 丙科 (무과 병과) - 무과는 말 그대로 무예와 병법을 평가하는 과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병과는 상위 몇 퍼센트인지를 보여주는 수치인데, 대체적으로 갑과, 을과, 병과로 구분됩니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1등급, 2등급, 3등급과 같은 느낌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이 무과 시험에서 병과의 등급을 받았습니다. 第四人(제사인) - 말 그대로 4등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순신 장군은 병과 중에서 4등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及第 出身者(급제 출신자) - 말 그대로 합격했다는 뜻입니다. 뒤에는 만력 4년 (만력 4년은 명나라 달력으로 기록된 것으로 우리가 아는 달력으로 변환하면 1576년이다.) 2월 X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무과는 갑과, 을과, 병과로 구분되는데 갑과는 최상위 1등부터 3등까지를 칭하고, 을과는 4등부터 8등까지 5명을 칭합니다. 그다음이 병과인데 병과는 총 21명을 뽑았습니다. 이를 통해 이순신 장군은 전체 12등으로 무과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실력을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합격자 중 대다수가 현역 군인이었다는 점, 응시자 수는 훨씬 많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역 군인들을 제치고 전체 12등을 했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 출처 -
[글]
국립현충사관리소. (n.d.). 무과 급제 교지. 국립현충사 디지털 아카이브. Retrieved August 23, 2025, from
조선왕조실록. (1576). 선조 9년 2월 병자 무과 방목(榜目).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Retrieved August 23, 2025, from https://sillok.history.go.kr
오마이뉴스. (2008, August 20). 장군의 성적은 병과 4등, 전체 합격자 29명 중 12등. 오마이뉴스. Retrieved August 23, 2025, from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3230
월간중앙, 영국, 일본 제독들도 인정한 이순신의 위대함, 이훈범
https://www.m-joong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00348
[사진]
[이순신 장군 무과급제 교지, 국가유산청 현충사 관리소, 공공누리 1 유형]
[이순신 난중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
[한홍일 무과 합격교지,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1 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