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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임진왜란을 가장 맹렬히 도운
명나라 만력제

『호기심이 생기는 역사』

by 박재한
1499px-MingShenzong1.jpg 만력제 초상화, 퍼블릭 도메인

007. 임진왜란을 가장 맹렬히 도운 명나라 만력제


"장비는 조선의 왕으로 환생하였고, 유비 형님은 명나라 황제로 환생하였는데, (중략) 아우의 나라가 큰 위험에 처했으니 도와주셔야 합니다." 명나라의 황제 만력제의 꿈에 관우가 나와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는 거짓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문장의 출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꼬리를 물고 물다가 결국에 나온 최종 지점은 임진록이라는 작자 미상의 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진록은 임진왜란을 다룬 17세기 전쟁소설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빙성은 믿지 못할 수준으로 넘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만력제가 조선을 돕기 위해 명나라의 기둥을 뽑다시피 도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는 궁금점. 도대체 만력제는 조선을 왜 도왔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도왔을까요?


명나라가 조선을 도운 이유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당시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치적 목표의 이행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당시 '정명가도'라는 구호로 조선을 침략하였습니다. 정명가도란 명을 점령하기 위해 조선을 길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있습니다.


선조실록 28권, 선조 25년 7월 1일 무오 11번째 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윤근수가 중국 차관 황응양에게 일본의 침략이 정명가도에 있음을 설명하다

(중략) 대체로 길을 빌어 중국을 침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중략)


명나라는 우선 천자국과 제후국이라는 당시의 외교관계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는 중화사상이라는 국제관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래 가운데 명나라를 기준으로 사방의 국가가 존재하는 국제적 질서 속에서 조선은 제후국으로서 천자국인 명나라를 소위 모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자신의 제후국인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지원을 안하게된다면, 정치적 입지와 국제관계 속에서 명나라의 부담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8월 1일 무자 3번째 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황제가 호군하는 비용으로 은 2만 냥을 내리다

조승훈(祖承訓)이 이미 패배하자 행재소에서 크게 두려워하여 요진(遼鎭)에 사신을 보내어 군사를 파견해서 구원해 주기를 계속 청하니, 병부(兵部)에서 주청하여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그 성지에 조선은 본래 정성을 다 바친 우리의 속국이다. 도적의 난을 당하고 있는데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요동 진무관(遼東鎭撫官)은 즉시 정병(精兵) 2 지(枝)를 보내어 구원하도록 하고 은(銀) 2만 냥을 그 나라에 보내 호군(犒軍)하게 하고 대홍저사(大紅紵絲) 2 표리(表裏)를 국왕에게 내려 위로하라.’ 하였다.


또한 명나라는 일본의 군대가 빠른 속도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점령하는 것을 보고, 전선을 굳이 명나라 본토 내로 확전 시킬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한반도를 전장으로 놓고 일본의 진격을 막아낸다면, 병력 손실이 조금 있더라도 본토는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0여 년을 은둔 생활을 하고 명나라 최대의 암군으로 평가받는 만력제가 이런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3월 1일 丁酉 4번째 기사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김성일이 왜인의 답서가 거만하다 하여 현소에게 항의하다

"사람의 한평생이 백년을 넘지 못하는데 어찌 답답하게 이 곳에만 오래도록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국가가 멀고 산하가 막혀 있음도 관계없이 한 번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大明國)에 들어가 우리 나라의 풍속을 4백여 주에 바꾸어 놓고 제도(帝都)의 정화(政化)를 억만년토록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마음입니다."


군사적 지원 또한 어마어마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는 5천 명의 선발대 지원을 시작으로 1593년 1월 평양 수복 작전에서는 4만-5만 명의 명군이 파병되었으며 1593년 1월부터 2월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이여송 장군을 필두로 수만 명이 조선 여러 지방에서 전투를 치렀습니다. 1597년 9월 정유재란 발발 당시에도 수만 명이 파병되었고, 1598년 1월에서 11월 사이에 벌어진 울산 1-2차 포위작전에서는 각각 4만 명과 2만 4천여 명이 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케네스 스워프(Kenneth M. Swope)는 조선에 파병한 명나라 누적 파병 규모가 약 16만 6700여 명이라고 기록한 수치도 있으니 많은 군인을 파병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 국방부 전쟁사편찬위원회의 임진왜란사를 보면 양난(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참전 병력의 수가 조선군은 13만 7600여 명이고, 명군은 20만 9100여 명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에도 조선의 입장에서는 명군의 지원이 대단히 든든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명군이 조선 영토에서 일으킨 여러 문제점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재정적 지원도 엄청났습니다. 명나라 조정은 임진왜란 7년의 기간 동안 1,000만 냥 이상의 은을 군비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명나라 조정의 1년 예산의 두 배가 넘는 규모라고 합니다. 이 군비에는 군인들의 봉급이 상당 부분 차지하였는데, 군인들의 봉급 역시 은으로 지급되었기 때문입니다. 10만 명의 병력을 조선에 파병 보냈을 때, 1 달에 15만 냥이 소요되었다는 추정을 감안한다면 상당 부분의 금액이 봉급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중국인 상인들이 이 봉급을 눈독 들이고 돈을 벌기 위해 명나라 군대가 가는 마을마다 돼지고기와 기타 음식으로 장사를 했다는 점은 재밌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또한 조선의 백성이 굶고 있다고 하자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명나라의 곡창지대라고 불리는 산둥성에서 쌀 100만 석을 매입하여 조선에 지원하였습니다. (2) 이 재정적 지원이 놀라운 점은 명나라 1년 국가 재정이 대략 450만 냥 정도 된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력 17년(1589): “태창 세입 327만 냥 남짓, 세출 346만 냥 남짓”)


이렇게 정치적,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해준 명나라에 크게 감명을 받은 조선 조정과 정치인들은 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라는 뜻의 재조지은을 핵심 구호로 삼았습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한국을 도와준 미국에 대한 존경심이 넘쳐난 작금의 현실처럼 당시에도 친명파가 조선 정치의 중심이자 뿌리가 되었으며, 이는 청나라의 부흥과 연결되어 영화 남한산성으로도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또한 막대한 양의 재정적 지원에 대해 광해군 시기 청구서를 내밀며, 은을 비롯한 자원을 뜯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새로운 신흥국인 청나라에게 밀려 멸망하는 단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 출처 -

(1)

1. 『명신종실록』에 평양 기습 실패 및 처분 기사(병력은 선발 기병 위주로 수천 단위로 파악).

2.『경략복국요편』에 평양 공략 시 동원 정수(각 문건 합산 4만대 후반으로 서술). 병과별 편차 존재.

3. 평양 수복 후 남하 과정 병력은 ‘평양전 동원 정수’ 범위 내 분전으로 파악(별도 대규모 증원 전).

4. 『명사』 만력 25년 인사·지휘체계 정비 기사(대대적 증원·지휘 라인 확립). 수치는 전역별로 상이.

5. 壬辰倭亂史 / 國防部戰史編纂委員會 285p


(2)

1. 아틀라스뉴스. (2019, 6월 14일). 임진왜란 그후②…명(明), 은 부족에 경제위기.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7에서 인용.

2. 오피니언뉴스. (2017, 9월 5일). 왜란 후…명나라 재정위기로 수탈당한 조선.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32에서 인용.

3.어기선. (2023, 1월 27일). [역사속 경제리뷰] 명나라 만력제 그리고 임진왜란. 파이낸셜리뷰.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77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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