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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꿔버린
신탁통치 오보 사건

『호기심이 생기는 역사』

by 박재한
민백-27374_신탁통치 반대 데모 / 미소군정기.jpg 한국학중앙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1945년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미국과 영국과 소련의 외교부 장관(외무장관)들이 모스크바에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회의를 우리는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라고 부르죠. 그리고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가 서울에서 발표되기 하루 전인 1945년 12월 27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어느 한 신문기사 조선 천지를 뒤흔듭니다.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이 제목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탁통치의 의미는 쉽게 이야기하면 국제연합의 위임을 받은 국가가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지역에 한하여 통치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의미는 한반도를 일단 외국이 점령을 하고 있다가 한국의 독립을 후에 시켜주자는 의미인 반면에 미국은 즉시 바로 독립을 원했다는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내용은 완벽히 가짜뉴스입니다. 진실 80%에 가짜 20%를 섞은 것이 아닌 그냥 순도 100% 가짜뉴스를 전국에 뿌려버립니다. 심지어 저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각종 미디어와 SNS 같은 정보 공유 매체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신문지의 힘이 엄청났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신문 기사로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이건 엄청난 파급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기사를 낸 기자라면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짜뉴스였는데요. 왜냐하면 진실은 바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했고, 소련은 한반도 즉각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신탁통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 1유형입니다..jpg 한국학중앙연구원이(가) 보유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저는 당시 한국인의 대다수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선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번 합리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미국의 관료이자 미군정청의 결정권자입니다. 미군정청 여론국에서 한국인들의 정치 성향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더니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한다는 국민이 전체에 어림잡아도 77%라고 합니다. 이 수치를 부정하기에는 표본 샘플이 8,000여 명입니다. 만약 이 한반도가 즉각 독립하여 선거를 치른다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을 선호하는 정부가 탄생할까요? 아니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을 좋아하는 정부가 탄생할까요? 백중의 백은 후자를 우려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국은 자본주의의 우월함과 우수함을 한국인들에게 보여주고 맛 보이기 위해 신탁통치를 주장하지 않았을까요?


반면 소련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어차피 선거를 치러봤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정부가 들어설 것이 뻔한데 굳이 신탁통치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외교와 정치에서는 동맹이란 없습니다. 철저히 자국우선주의이자 자국에 얼마나 마진이 남냐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결코 선과 악의 개념으로 싸운 것이 아닌 순수히 이데올리기 전쟁 중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피 터지게 외교 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신생 국가 한국을 놓고 신탁통치를 할 것이냐, 즉각 독립을 할 것이냐의 싸움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해방정국은 정반대의 길로 들어갑니다. 동아일보에서 미국은 즉각 독립을 주장한 반면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기사를 쓴 것이죠. 한국인들은 일제히 반발했습니다. 거의 전역에서 신탁통치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더불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해 소련을 적대시하는 여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는 다음날 기사를 통해 "신탁통치보다 차라리 우리에게 죽음을 주는 것이 나을 것"(1)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떤 사설에서는 "망국 40년 뼈에 사무친 통한을 그대로 폭탄 삼아 신탁통치 정권에 부딪쳐 보자"라고 썼습니다. 당시의 감정과 과격한 표현이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감정적인 사설이었습니다. 12월 28일부터는 좌익과 우익 진영이 모두 모여 반탁 성명을 발표하고 투쟁을 결의했습니다. 김구 주석 또한 임정 요인들과 함께 반탁을 결정했습니다. 전국의 분위기가 전부 반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2) 이후 좌익 진영에서 통일된 한국을 건국하기 위해서는 신탁통치를 수용하는 것이 맞다며 찬탁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찬탁과 반탁의 이념 전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반탁 진영에서 찬탁 진영을 향해 '빨갱이', '매국 놈' 등의 표현을 쓰며 매도하였고 이렇게 해방 후의 정치는 대혼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역사의 만약이란 없습니다. 그저 상상과 소설을 쓸 뿐이죠. 하지만 만약 기사가 제대로 났다면 국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상도 하기 싫지만 아마 반미 정서가 한반도 전체를 뒤덮었을 것입니다. 신탁통치를 소련이 주장했다고 하는 기사 하나로 반소련 정서가 전국을 뒤덮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예상해 볼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히 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이 펼쳐져 있겠죠. 참 역사는 알면 알수록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 출처 -

(1)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147P.

(2) 한국 현대사 산책,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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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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