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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64년 1월 21일
고종의 즉위와 대원군의 섭정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첫 번째 장면

by 박재한
1864.01.21 고종 즉위 (사진은 1884년 창덕궁에서 찍음) 퍼블릭 도메인-다음에서-변환-webp.jpeg
1864.01.21 흥선대원군 섭정 퍼블릭 도메인-다음에서-변환-webp.jpeg

<1884년 창덕궁에서 찍은 고종, 퍼블릭 도메인 / 흥선대원군, 퍼블릭 도메인>


양력으로 1864년 1월 6일, 철종이 후사 없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그날 대왕대비인 신정왕후 조 씨는 흥선군(우리가 알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다음 왕으로 지목하였다. 그 당시 고종은 12살이었다. 신정왕후 조 씨는 어린 고종을 대신해 그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을 통해 안동 김 씨 세력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흥선대원군은 섭정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중앙 정치에 발을 들였다.


흥선대원군은 1864년부터 최익현에게 탄핵당한 1873년까지 10년 동안 어마어마한 개혁을 일구어냈다. 붕당정치의 상징이자 권력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비변사를 부숴버리고, 의정부와 삼군부, 6조라는 국가기관을 되살려 왕권강화를 일구어냈다. 1800년부터 63년 동안 문란하게 운영되었던 세금 및 수취체제를 호포제와 같은 개혁으로 세금 제도를 안정화하여 백성들의 지지도 얻었다. 하지만 이양선의 출몰과 병인양요(1866),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 미수 사건(1868), 신미양요(1871) 등을 겪은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우며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다는 의미를 가진 '쇄국'을 결정하였고, 이 결정으로 인하여 조선은 세계와 완벽히 단절되게 된다.


1873년 대원군이 탄핵당한 이후 고종은 실권을 잡은듯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민비와 민비의 가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그들은 10년 동안 진행되었던 쇄국과는 다르게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 통상 수교 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열강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었고, 옆나라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문을 열기는 하였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 조선 정부는 일본, 청나라, 러시아, 미국 등의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속에서 방황하였다. 이후 조선에 대한 열강의 이권침탈 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러시아를 조선의 정치의 중심으로 부르려는 민비의 의도를 파악한 일본이 민비(명성황후)를 시해하며 정국은 급속히 얼어붙게 된다. (을미사변, 1895)


우리는 고종을 그저 망국의 무능한 암군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당시 외국인의 눈에서는 고종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 같다. 영국의 외교관으로 조선에서 근무하였던 앵거스 해밀턴은 고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는 다정하고 온화하며 자비로운 군주로, 나라의 발전을 진심으로 열망한다. 그는 밤늦도록 일하며, 새벽이 밝을 때까지 장관들과의 회의와 협의를 계속한다. 서양의 기준으로 볼 때 그에게는 결점도 많지만, 나는 그 기준으로 그를 판단할 생각은 없다. 그는 또한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으며, 그가 장려해 온 광범위한 개혁 사업들에 대해 모든 외국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으며,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He is a kind, amiable, and merciful potentate, desirous of the advancement of his country. He works at night, continuing the sessions and conferences with his Ministers until after dawn. He has faults, many, according to the Western standards by which I have no intention of judging him. He has also many virtues; and he receives, and deserves, the sympathy of all foreigners in the vast works of reform which he has encouraged in his dominions.) (1)


(1) Angus Hamilton, Korea (London: William Heinemann, 1904), p.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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