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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작별

흔적이 남아 있는 곳

by 최순옥
내가 찍은 사진

아름답지 않은가?

고향집 장남교 1

고향집으로 가는 길, 장남교를 건널 때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출렁인다.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차,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가로등 끝에 앉은 새 한 마리까지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으면, 멀리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새 차를 뽑은 지 한 달,

그 차를 몰고 고향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젊은 날, 가족을 태우고 이 길을 달리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앉아 그 시절 아버지를 마음속에 태우고 달린다.

언젠가 꼭, 이 새 차에 아버지를 모시고 이 길을 함께

건너고 싶다.

창밖 들녘을 바라보며 “하늘 참 좋구나” 하시던 목소리,

다시 듣고 싶은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 맴돈다.


그날의 하늘도 오늘처럼 맑고,

바람도 부드럽게 불어오기를. 아버지와 나,

그리고 이 길 위의 시간까지 모두 평화롭기를.

마음속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추억과 현재가 어우러지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프롤로그 — 전해진 것도, 전해지지 않은 것도


“그분, 돌아가셨대.”

아버지는 그 말을 조용히 꺼낸 뒤,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셨다.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으셨다. 그 순간, 나는 어떤 질문도 꺼낼 수 없었다. 언제였는지, 어디서였는지,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묻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 더 내려앉은 것만 느껴졌고, 창밖으로 길게 뻗은 가을빛 나뭇가지가 쓸쓸하면서도 은은하게 마음을 감쌌다.

그분이 떠났다는 소식은 나도 한 달쯤 전에 들었다. 정확한 날짜는 몰랐다. 부고조차 누구에게도 확실히 전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투와 표정에서, 그 소식을 얼마나 오래 삼켜왔는지 알 수 있었다.

말 대신 침묵이 먼저였던 소식. 이름조차 조심스러운 죽음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지만 마음 깊이 스며드는 무게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병상, 말 없는 애도

그날 이후, 아버지는 더욱 말씀이 없으셨다.

식사 시간에도,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바꿀 때에도, 창가에 드리운 햇살을 눈 감고 받을 때에도, 아버지는 조용히 계셨다.


그분의 이름은 다시 입에 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이름조차 꺼내기 어려운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말로 전하지 않아도, 표정과 손끝, 눈빛으로 아버지 마음 한편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분의 죽음이 아버지 안의 한 조각을 조용히, 그러나 깊게 데려갔다는 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우정이라 해도 충분했던 관계. 혹은 그 어느 말로도 정의할 수 없는, 오래된 인연의 그림자.

그 조용한 동행의 끝자락에서 아버지는 누구보다 깊이, 누구보다 따뜻하게 슬퍼하고 계셨다.


내 머릿속에서 되짚는 시간

그분의 부재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지 못한 이별로 남았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마음속으로 연락해 볼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그날, 누가 울었을까.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모른다는 건 때로 잔인하다.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슬픔을 더 오래 붙들게 한다.


마음의 준비조차 할 수 없는 이별은, 이름을 부르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머문다.

함께 울지도, 제대로 작별하지도 못한 채, 기억 속 그 사람을 홀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아버지와 그분 사이에 오갔을 수많은 말들, 미소들, 짧은 산책들, 그 모든 사소한 풍경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가을 찬 공기 속에서도 따뜻하게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집에 돌아와 오래된 옷장을 열었다.

한겨울, 평택과 남대문 시장을 오가며 아버지와 그분이 함께 골라 사 오셨던 검정 브이넥 뽀글이 가디건.

그때는 마음속에 분노와 화가 자리 잡고 있어, 아버지와 그분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화가 나서 한때는 버리려 하기도 하고, 아버지 옷장 구석에 둘둘 말아 던져놓기도 했다.


비싸지 않은 옷이었지만, 단단히 짜인 뽀글이 재질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시간이 지나고, 가끔 내가 그 가디건을 입어보면, 단추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세심함과 마음이 스며드는 온기가 전해졌다.


창가에 앉아 연필을 잡으면, 그 가디건을 입은 내 모습과 함께 아버지와 그분이 시장을 거닐며 웃던 풍경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눈발이 흩날리고, 사람들의 발걸음과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장면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때의 감정과 따뜻함이 뒤섞여, 단순한 옷 한 벌이 아니라, 기억과 마음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되어주었다.

고향집 장남교 2


에필로그 1 —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별

나는 지금도 그분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 입 끝에 맴돌다, 조용히 삼켜진다.

어쩌면 내가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것은 그분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했던 아버지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과거를 이해한다는 건, 그저 그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말없이 애도하고, 기억하며, 조용히 그리워하는 것.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만 남은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병실 창가에 조용히 앉아, 창밖에 흩날리는 마지막 낙엽을 바라본다.

그분 곁에 있었던 아버지를, 그리고 그 시간 속의 공기를 떠올린다.


말은 없지만, 그 순간에는 여전히 따뜻한 커피 향처럼 남은 무언가가 있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그 조용한 기억이 이 가을을 감싸고 있다.


에필로그 2 — 꿈에서 만난 평화로운 시간

2025년 10월 21일 새벽, 나는 아주 행복하고 평온한 꿈을 꾸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셨고, 옥상에는 대추가 풍년을 이루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음식들이 식탁에 가득했고, 오빠와 친구 연철 오빠가 다시 만나 서로를 끌어안았다.


예전에 청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계장님, 이 계장님도 함께였고, 모두가 따뜻한 시간을 나누었다.

그 꿈은 현실의 무거운 슬픔을 잠시 내려놓게 해 주었고, 마음 깊은 곳에 따스한 위로로 남았다.


다음 편 예고

「아버지의 의자 12편 — 편지 쓰는 오후」

가을의 끝자락, 나는 아버지 병상 곁에서 조용히 종이를 꺼냈다.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 그리고 이제는 조용히 나눌 수밖에 없는 사랑의 방식.

그날, 한 장의 편지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편지에는 어떤 말도, 어떤 눈물도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곧, 우리가 마주한 가을의 또 다른 작별법이었다.


작가의 말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관계의 깊이를 조심스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별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그 순간일까.

아니면 이미 말이 줄어든 오래전 어느 날,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던 그날부터였을까.

이번 한 주는 유독 스산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따스한 빛이 남아 있었다.

중랑천에서 사라진 한 아이의 안타까운 소식, 아침에 날아든 이종 동생의 갑작스러운 부고, 그리고 떠난 사람들의 소식까지.

이 모든 작별들이 내 안에서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떠난다는 건, 언제부터일까.”


아버지의 의자 옆에서 그 질문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이 글을 썼다.

어떤 이별은 말없이 찾아오고, 어떤 사랑은 말없이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조용한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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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