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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미남, 아버지

치매와 함께한 시간, 그리고 되찾은 미소

by 최순옥
꽃미남

꽃미남 아버지 그리고 고우신 어머니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장면처럼.

그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바람을 가르며 웃던 두 사람의 청춘이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젊은 날의 아버지, 그리고 단정한 어머니.

이 사진 한 장이, 우리 가족의 첫 장이었다.


프롤로그

2023년 봄, 아버지께 치매 검사를 권했을 때, 이상한 말씀들이 반복되었다.

외삼촌 댁 안방에 있는 금고에서 금궤를 가져와야 한다,

쌀을 가져와야 한다, 텃골 땅은 엄마 거다…”

현실과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안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책임감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그 기다림 속에서, 가족의 사랑과 따뜻함이 아버지께 닿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을 지켜온 어머니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곁에는 늘 강인한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집안의 장녀로, 9형제를 돌보며 19살 차이 나는 막내까지 챙기셔야 했다.

전쟁 중 가장 고된 시간을 보내면서도, 큰외삼촌을 업고 임진강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에도 빨래를 하셨다.

손끝이 시려도 멈출 수 없었고, 얼어붙은 강물을 헤치며 하나하나 빨래를 널 때마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집안의 막내들을 위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셨다.

그 고단함 속에서도 어머니의 눈빛에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 결의는 세월을 건너 아버지에게 닿았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아버지를 오랫동안 붙들어 주었다.


가족과의 만남

아버지가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큰 외숙모와 큰외삼촌께 조심스럽게 의논드렸다.

“아버지께서 요즘 현실과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우리 함께 이해시키고 도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두 분은 “차분히 현실을 말씀드릴 자리를 마련해 보자”라고 하셨고, 큰외삼촌은 좋은 한우집을 예약했다.


그날 아버지는 약속에 반색하셨다.

고기를 굽고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며, 큰외삼촌은 현실과 다른 생각들을 부드럽게 짚어주셨다.

큰 외숙모는 아버지 손을 잡아주시며, “잘 드시고 운동도 하셔야 해요”라고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그 손길은 아버지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시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나는 명절마다 화장품과 스카프를 사서 큰 외숙모께 전했고,

그 따뜻한 품에 안기면, 마치 엄마 품처럼 안전하고 안온했다.

“우리 순옥이 고생이 많다”라고 토닥여 주시는 그 손길에 나는 그저 안기고만 싶었다.


그날 아버지를 현실로 이끈 건 설명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었다.

사랑과 손길, 함께하는 온기가 아버지의 마음을 지켜주었다.


치매와 건강의 시작

2010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아버지의 건강은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

2015년 11월, 김장하던 새벽,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긴급 수술 후 두 달간 병원에 계셨고, 퇴원 후에도 혼란스러운 말씀을 자주 하셨다.

“여긴 LG 새시 공장이야. 우리 집 뒤에 있던.”

나는 그때마다 정정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2023년, MRI 검사에서는 주먹만 한 검은 흔적이 발견되었다.

28세 때 폭발물 사고로 생긴 흔적이었다.

의사는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해오신 게 정말 기적입니다.”


며칠 후, 약국 앞에서 주간보호센터 차량과 마주쳤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요양보호사님들을 보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셨다.

“나도 한번 가볼까…”

그 작은 동의가 시작이었다.

변화의 한가운데서도 아버지는 늘 아버지답게, 꿋꿋하게 서 계셨다.


따뜻한 공간, 주간보호센터

처음에는 낯설어하셨지만, 센터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옛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게임과 노래, 운동과 그림 그리기에 참여했다.

특히 송대관의 〈해 뜰 날〉을 마이크에 대고 부르시던 모습은 가족 모두에게 오랜만의 미소를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센터에서 “잘생긴 미남”으로 불렸다.

간식을 나눠주고,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다.


2023년 10월 3일부터는 활동 참여도가 더욱 높아졌다.

풍선배구, 윷놀이, 색칠 공부, 동화 낭독, 노래방 등 아버지는 빠지지 않고 성실히 참여했다.

균형 잡힌 식사 덕분에 체중도 늘고, 무엇보다 웃음이 부쩍 많아졌다.


다시 찾아온 위기와 회복

2024년 2월 7일,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어 긴급 입원하게 되었다.

그 순간, 가족 모두 숨을 삼켰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 한 번 기적처럼 회복했다.

의사의 말처럼, “살려는 의지가 강한 분”이셨다.


회복 후, 아버지는 다시 센터에 나가기 시작했다. 노래 시간에 앞에 나서며

“내가 제일 잘생긴 미남이지”

라며 웃음을 건네셨다.

그 모든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에필로그

아버지의 병은 우리 가족에게 깊은 시련이자,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주간보호센터는 단순한 돌봄의 공간이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다리였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도 마음의 쉼표이자 회복의 시작이 되었다.


아버지, 오늘도 잘 다녀오셨어요?”

“응. 내가 잘생긴 미남이라 다들 좋아해.”

그 웃음이 지금도 우리 가족 모두를 붙들어주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아버지와 함께한 작고 따뜻한 일상과

조금씩 변해가는 가족의 모습을 나누려고 한다.

치매와 싸우는 일은 단지 병과의 싸움이 아니라

기억과 사랑을 지켜내는 여정임을 계속해서 함께 나누려 한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내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함께 걸어온 길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러나 막상 닥치면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 속에서도 우리를 웃게 한 건 사람의 따뜻함,

다시 일어서게 한 건 함께였다는 사실이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잘생긴 미남”으로 불리던 아버지.

그 별명은 단지 유쾌한 농담이 아니라,

아버지가 다시 삶의 무대에 올라섰다는 증거였다.


이 글이 비슷한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아주길.

그 손 하나가, 어떤 기억보다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다정했던 그 시절 서로를 바라보며 웃으시던 부모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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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