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늦은 밤까지 노트북을 열어두었다.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다.
교정 원고 파일을 띄워 놓았지만, 몇 시간째 커서는 같은 줄에서만 깜박이고 있다.
도통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몇 번이고 문장을 고쳤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노트북을 덮어 버렸다.
밤새 뒤척였다. 과거의 기억들이 길고 긴사슬이 되어 내 영혼을 옥죄어오는 기분이 나를 더욱더 괴롭게 만들었다.
문득,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안 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이혼하면 친정 부모에게 기대기도 한다던데.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시댁과 남편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사는지 뻔히 알면서도 나 보고만 참으라던 내 부모는 끝내 이혼을 받아들인 나에게 '자식에게 상처 준 참을성 없는 엄마'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 이혼 요구의 당사자가 내가 아닌 걸 알면서도,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시부모 비위 하나 못 맞춰
이지경까지 왔냐며 내 상처서에 소금을 짝으로 뿌려댔다.
그때 난 천하에 고아가 된 것만 같았다. 이혼으로도 모자라 부모에게까지 외면당한, 그 어디에도 기댈 사람 하나 없는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고아. 그 이후 마음의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눈물로 가득 찬 가슴을 달래기 위해 아침 식사도 거르고 동네를 배회했다.
한참을 걷다가 결국 다시 태석의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곳에서는
내 얘기를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다.
문을 열자 볕이 길게 바닥을 스쳤다. 태석은 카운터에 기대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짧은 인사와 함께 커피 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후,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카운터에 매달렸다.
“아저씨, 아이스초코 돼요?”
“쿠키도 주세요!”
태석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손놀림을 재빨리 놀렸다.
“줄 서야지. 하나씩 말해야 돼.”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음 한쪽에 걸린 돌덩이가 잠시나마 덜 무겁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떠나자 카페는 다시 고요해졌다. 태석이 컵을 닦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저도 예전에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괜히 밖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던 적이 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 머물러 있었다.
“집 안에 허전함과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말끝이 잘려 나간 듯 가라앉았다. 얼굴에 스친 그늘이 오래 남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다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녁식사 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데 좀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상태의 지속. 그때,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전남편이다.
“무슨 일인데.”
“윤호 오늘 체험학습 다녀왔다. 준비물 챙겨 놨더니 문제없었어.”
마치 보고하는 듯한 건조한 목소리.
“… 그래.”
“사진도 몇 장 찍어 놨어. 필요하면 보내줄까.”
“됐어.”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터져 나온 목소리는 나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신이 원해서 이혼한 거 아냐? 근데 왜 자꾸 애 핑계로 전화해? 불편해. 윤호한테 폰을 사주든가, 아니면 내가 사줄게. 당신 목소리 이제 듣고 싶지 않아.”
상대는 비웃듯 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우리 엄마야 옛날분이니 그럴 수 있지. 너만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별거 아닌 일들이었어. 말은 바로 해야지.”
“… 역시 끝까지 당신답다. 당신이 그렇게 끔찍이 생각하던 어머님이랑 같이 사니 행복하겠네. 난 이제 진절머리나, 당신이라는 사람. 다시는 전화하지 마.”
"잠시만. 딴말은 필요 없고. 일전에 얘기한 거 기억나지. 애 발표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남편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안 가는 게 맞지만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알고 있어. 보러 갈 거야. 어디서 하는지, 몇 시까지 가면 되는지 문자로 보내놔. 이만 끊을게."
뚝. 이번에는 내쪽에서 먼저 끊어버렸다. 손이 떨려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숨이 가빠져 목이 막히는 듯했다.
마당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보니 태석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곧 꺼버렸다. 작은 불씨가 어둠에 삼켜졌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오전 일찍 일을 끝내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발걸음은 더딘데, 마음은 이미 앞질러 달리고 있었다.
창가에 앉자 태석이 물었다.
“어제 전화 일부러 들은 건 아니고…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우연히 들었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가 이어갈 말을 기다렸다.
“저도 잃은 사람이 있어요.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때 그 사람은 임신 초기였는데, 교통사고가 났어요. 운전은 제가 했고, 그 사람은 조수석에서…"
태석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 번에 두 사람을 잃었어요. 그러고 나니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일 년 넘게 미친 사람처럼
술만 마신 것 같아요.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크기도 하고, 제 차를 들이받은 화물차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다고 시인했지만,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에 비해 죗값은 크지 않다고 느껴져 더 절망스러웠어요.
죽고 싶더라고요. 그때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 녀석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먼저 떠난 두 사람이 진정 그걸 원하겠냐고, 어떻게든 살길 바라지 않겠냐고... 나중에 만났을 때 당신들 몫까지 열심히 살다 왔다고 얘기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그 말에 조금 정신이 들었어요."
태석의 말이 끝나고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깊고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앞에서 그동안 나는 세상 모든 슬픔을 다 끌어안고 사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지내고 있었다. 오히려 위로를 받아도 모자랄 사람에 이태껏 크고 작은 위로를 받아온 게 미안했다.
"그런 큰 일을 겪으셨을 거라고는... 죄송해요. 태석 씨에 비하면 저는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제가 그동안 너무 제 얘기만 하고, 제 입장만 생각했어요..."
"제가 한 얘기에서 선영 씨가 미안해할 부분은 어디에도 없어요. 어디까지나 저에게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제가 극복해 나 숙제이기도 하죠. 제 상처가 이렇다고 해 선영 씨의 상처가 작은 건 아니에요. 보고 싶어도 매일 볼 수 없는 그 슬픔 누구보다 잘 알아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위로다운 위로를 처음 들었기 때문인 걸까. 태석의 위로와 같은 말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태석은 더 이상의 말 대신 반듯하게 접은 손수건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허브차를 앞에 내어주고는 카페를 찾는 손님들을 맞았다.
바깥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루를 온통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며 흘러 보냈다.
태석은 일찌감치 카페 문을 닫고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며 앞장섰다. 태석의 차를 타고 십여분 달려 도착한 곳은 칼국수집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근처에서 가장 맛집이라고 했다. 시골에 있는 식당이지만 저녁 손님이 제법 많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나도 모른 게 미소가 지어졌다.
태석이 주문한 칼국수 2인분과 김치만두, 겉절이와 양념장이 상 위에 차려졌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상차림.
태석이 칼국수를 그릇에 옮겨 담아 내 앞에 놓아주었다. 얼른 먹어보라는 손짓에 젓가락을 들었다. 참 따뜻해지는 이 기분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허기졌던 마음도 덩달아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말씀하신 대로 정말 맛집이네요. 겉절이도 맛있고, 만두도 맛있어요."
태석이 웃으며 말했다.
"다온골에 온 이후 지금처럼 잘 드시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아요. 억지로 밀어 넣거나 거르거나... 거의 그런 모습만 보다가 잘 드시는 모습 보니 제가 다 마음이 놓이네요."
그런 태석을 보며 불쑥 질문이 튀어나왔다.
"평소에 주변 분들을 잘 챙기시나 봐요. 마을 일에 앞장 서시는 것도 그렇고, 다온골에 온 지 얼마 안 된
저도 이렇게 챙겨주시고..."
"... 제 별명이 옛날부터 냉혈한이에요. 친구들조차도 쓸데없이 냉정하다고 한 마디씩 했었거든요. 큰 일 겪고 저 역시 살기 위해 도망치듯 떠나온 곳이 여기에요. 외지인이니 처음에는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심으로 대해줘서 저도 마음 문을 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선영 씨는..."
머뭇거리던 태석은 얘기를 이어갔다.
"꼭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상처를 짊어지고 처음 이곳에 와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제 모습이랑 겹쳐 보이더라고요."
이제야 태석이 어떤 사람인지, 그간 태석이 한 얘기들에 어떤 뜻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선영 씨,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숨 쉬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선영 씨도 숨 쉬고, 상처가 아물 수 있게 약도 발라주고 그래요. 아들도 엄마가 우울하고 슬픈 삶을 살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바쁘게 일 할거 하면서 억지로라도 웃을 일 만들면서 살아봐요. 이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어쩌면 나는 그 누구에게라도 이런 위로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태석의 그 말에 오랫동안 짓눌려 아프던 마음의 통증이 옅어지고, 얼마 만에 배부른 식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마음속 허기까지 채워진 따뜻한 한 끼였다.
몇 시간 전까진 죽을 것 같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게 끝나고 실패했다고 느낀 내 삶이 이곳에서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은 일이 다 온다는 다온골에서 만난 태석의 말이 죽어가던 나를 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