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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가?

프롤로그

by 우주숲

육아휴직과 함께 맞이한 2025년. 6년간 쉼 없이 일만 했다 보니 집에서 쉬며(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기와 1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설레고 새로웠다. 일을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인데다 지금 하는 일은 워라벨이 좋지 않은 편이라 병가나 연차를 사용해도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기도 해서 쉽게 쉴 수 없었다. 그런데 1년 동안은 업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니! 일에 지쳤던 나에게 육아휴직은 온전한 휴식처럼 느껴졌다.


아기와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아까워 올해는 더 열심히 기록했다.

처음으로 포옥 안긴 날, 울음이 멈추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며 밤을 지새우던 날, 소리 내서 활짝 웃던 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모습과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다 아기가 나를 처음으로 빤히 바라보던 그날,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워있던 나를 보고 '아기 같아' 하며 환하게 웃어 보이던 엄마. 수십 년간 이해하지 못했는데 우리 아기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니 엄마가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에피소드는 이 책에서 나중에 더 자세히 다뤄보려 하는데 언젠가 용기가 나면 엄마에게 내 생각이 맞았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렇게 엄마가 되고 나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때 아빠의 말은 정말 날 위한 것이었을까? 그때 엄마는 왜 그랬을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고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아기의 미래를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모아주고 싶은 게 부모가 된 내 마음인데 우리 아빠, 엄마도 정말 그랬을까?


아기에게 사랑을 쏟을수록 어쩐지 내 마음 한구석은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기가 햇빛에 조금이라도 탈까 양산을 요리조리 돌리며 온몸으로 햇빛을 막아주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나다가도 듬뿍 사랑을 주는 부모가 있는 내 딸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들자 손녀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불편함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한가득 반찬을 해다 주는 엄마를 만나도, 손녀에게 물심양면 아낌없이 지원해 주는 아빠를 만나도 고마움보다 원망을 느끼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답답함과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표현할 길 없는 내 마음, 알 수 없는 감정의 원인을 찾기 위해 불편했던 기억들을 꺼내보기로 했다. 살다 보니 잊힌 게 아닌 살기 위해 애써 지워낸 나의 유년 시절. 꺼내보니 기억의 자국은 선명하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시금 상처를 마주하니 산후우울증이 찾아올 틈 없이 행복했던 시간들이 우울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그 기억들을 다시 묻어보려 했지만 내 옆에서 나만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기를 보니 이제는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 기억들을 완전히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를 위해 그리고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부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을 땐 조금의 원망도 남아 있지 않기를 그리고 그 끝에 위로받은 또 다른 누군가가 웃음 짓고 서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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